2023년 1월 29일 서교동 대안연구공동체 강의실에서 <짐을 끄는 짐승들>로 토론했습니다.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는 3세션의 두번째 토론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장애중심주의로 운영됨을 폭로하면서 이 뿐 아이라 동물 '해방'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인간중심주의, 종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가 내재 되어 있음을 비판합니다. 장애인이 받는 억압과, 동물이 받는 억압을 각각, 그리고 연관시켜 그것이 왜 부당한 것인지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그러하지 않다는 내용들이 치밀한 논리를 가지고 서술되어 있어 감당하기 어렵기도 했고 부담스럽기도 했는데요, 참여자들 모두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일본사람이 한국어로 번역한 것도 놀라웠다고 하셨고요.
인디언 속담에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을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직접 충분히 경험해 봐야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텐데요. 경험하는 것은 둘째 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만나서 발췌문을 돌아가며 읽고 이야기하고 하면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세시간 넘는 시간동안 토론을 했는데요, 이야기 나누지 못한 내용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두와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음을 살펴 보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책읽은 소감과 선생님께서 만드신 토론질문, 발췌문을 정리했습니다. ~
다음 모임은 2주후인 2월 11일이고요,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토론할 예정입니다.
■ 토론도서: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이마즈 유리, 오월의 봄, 2020)
Beasts of Burden: Animal and Disability Liberation (2017년)
■ 일시 :1.28 (토) 오전10:00 ~ 오후 1:00
■ 장소 : 대안연 강의실(온+오프 병행)
목차
책소개: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잇는 아름답고도 촘촘한 사유의 다리
『오랫동안 짐짝 취급된 존재들이, 서로의 수레를 끌어주며 해방을 위해 함께 나아가는 곳』, 그곳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장애가 없는 ‘비장애 신체(성)abled-bodiedness’을 정상’과 ‘표준’의 몸으로 제시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몸들을 배제하고 억압한다.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기존 비판이 억압받는 이 몸들을 ‘인간의 몸’으로 상정했다면, 테일러는 여기에 ‘동물/짐승의 몸’을 추가함으로써 전례 없는 교차성의 사유를 보여준다.
저자는 동물이 겪는 억압과 장애인이 겪는 억압을 교차적으로 사유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이 반목하게 된 이 두 운동을 다시 잇고자 한다.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 종차별주의가 공모하는 폭력을 인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놓치지 말자는 것, 이것이 바로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제안이다.
[1] 책을 읽은 소감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 종차별주의가 공모하는 폭력을 인지하면서도
장애인과 동물이라는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놓치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 책을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 작가, 화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저자가 쓴, 많은 양의 참고문헌이 실린 논문같은 책이었다.
- 관점이 드러난 에세이 이면서도 논문인 책이다.
- 역자후기에 보면 역자는 원문을 일본어로 변역했는데 일본인이 한국어 번역도 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역자가 문화인류학을 전공이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나는 <인간의 조건> <육식의 성정치> <장애학의 도전>등을 책을 통해 접한 적이 있어서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 이전에 그런 책을 읽고, 행동의 변화를 꾀했으나, 관성의 법칙으로 이내 이전으로 돌아가는 등 생활에 변화가 없기에 책읽기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본다고 느꼈다.
균형을 가질 수 있는 시각을 길러준다고 느꼈다.
주류에서 바라본 장애에 대한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사유로 살펴볼 것을 촉구한다.
기본적으로 장애를 주어진 것으로 보는지 vs. 탈출 가능한 것으로 보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후마니타스 |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치유를 당연한 것이 아닌 선택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상태가 호전되거나 병이 완전히 낫지 않아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지식이 요구되며 장애와 질병의 현존과 경험 자체가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접힌 시간성’을 다시 펼쳐낼 때다. 장애와 질병을 가진 몸의 현재에 기쁨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사회를 새롭게 구성해야한다. 뇌병변 장애인이자 활동가이며 작가인 일리아 클레어의 말처럼 “치료되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이지 우리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해방, 동물해방 등 분산된 여러 '비주류'의 주장을 한 데 묶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비주류의 작은 목소리를 큰목소리로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빌리러 서대문도서관에 갔는데, 분류법 기호가 194.9였다. 190은 윤리학이고 194는 사회윤리 분야에 부여되는 책이다. 윤리는 다른 존재와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가를 다룬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특히 장애와 동물해방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 한편으로 이 책 옆에는 <포스트휴먼시대의 윤리-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현실성을 찾아서>가 꽂혀 있었다.
이런 분야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는 이유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의 발달에 따라, 기존에는 인간중에 인간의 자리를 차치했던 - 남자/ 백인/지식인/비장애인의 지위도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생각난 책들
ⓛ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인간의 조건 - 한승태 지음/시대의창 |
돈사의 불결함은 돼지의 성장과 비례했다. 비육사는 자돈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② 육식의 성정치 - 여혐 문화와 남성성 신화를 넘어 페미니즘 - 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향해
육식의 성정치 -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이매진 |
P. 145 우리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수준에서 동물 억압을 제도화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하나는 도살장, 정육점, 동물원, 실험실, 서커스단처럼 공식적인 구조의 수준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의 수준이다. ‘시체를 먹다corpse eating’라고 하지 않고 ‘고기를 먹다meat eating’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의 언어가 육식에 관한 지배 문화의 승인을 후대에 전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 예다.
③ 장애학의 도전
‘장애’를 ‘개인의 몸’에 존재하는 손상이 아닌 ‘사회적 산물’로 볼 것을 강조한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이 10년 만에 새로운 저서로 돌아왔다. 이 책 《장애학의 도전》에서는 장애인을 비롯해 인간의 위계에서 가장 후미에 위치한 이들의 자리에서 사회를 바라보고자 했다.
장애학의 도전 - 김도현 지음/오월의봄 |
‘장애학의 시좌’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위계에서 제일 후미에 위치한 이들의 자리에서, 혹은 이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의 자리에서 이 사회의 풍경을 본다는 말일 것입니다. 후미와 변방이라는 자리는, 단지 동일한 대상의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을 넘어, 선두와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두와 중심에서 본 세계와는 다른 세계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세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P.12
※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
1.상호교차성이란 상호교차성 또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최근 약 20년 사이에 급부상한 이론이자 방법론, 또는 패러다임으로, 상호교차적인(intersecting) 또는 겹치는(overlapping) 사회 정체성 및 이와 관련된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연구한다.[1] 1989년에 미국의 비판적 법 인종 이론(critical legal race) 연구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셔(Kimberlé Williams Crenshaw)에 의해 고안되었다.
2. 상호교차성 상호교차성 이론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작용하는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창발적 속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 의하면 여성이 받는 차별과 흑인이 받는 차별을 개별적으로 나누어 분석한 후 이 둘을 취합하는 방식으로는 흑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사람이 받는 차별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2 역사 상호교차성 이론은 블랙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2] 장애라는 범주는 사회적 구성물- 19세기 중반 개념이 견고해지기 시작했으며, 변경가능한-일시적 개념이다
여러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은 세계 인구의 15~20퍼센트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의 소수자 집단인 것이다. [...]
피오나 캠벨에 따르면 “다른 소수자 집단들과 달리 장애인은 집단의식, 정체성 혹은 문화를 발전시킬 기회가 많지 않았다.” 장애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고립되어 있다. 캠벨이 말하듯, 이러한 “분산”은 장애란 드문 경험이며 각자가 극복해야 할 고유한 고난이라는 고립적 인상으로 이어진다. 공해로 인해 어떤 동네의 천식과 선천성 장애 비율이 높아지는 경우처럼, 장애가 커뮤니티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 조차 그것은 주로 한 개인의 의료 문제로 간주된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사회정치적 난제들은 흔히 불행과 분투라는 개인화된 서사가 되고 만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들과 매일 마주친다. 단지 그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그리고 그들 또한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많은 경우 심각한 낙인이 찍히는 것임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비장애인으로 “패싱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미국에서 차이의 범주로서 장애가 견고해진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병리화되고 고용 불가능하다고 간주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부적합하고 의존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범주화하고 분리하기 위한 다양한 자선 단체, 시설, 우생학적 관행, 복지 규정이 등장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차이를 지닌 다양한 몸으로 분류되고 규정되면서, “정상적”이라는 용어의 근대적 함의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 인종,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관한 정의들과 유사하게 장애에 대한 정의, 즉 무엇을 장애로 간주하며, 장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종교나 정치, 경제 정책, 친족 구조 등 수많은 요인들에 따라 계속 해서 변한다. 또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의 의미가 변하면서, 장애에 대한 정의가 이것들과 서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맞물리기도 했다.
장애라는 범주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은 오늘날 미국에서 장애를 정의하려고 할 때 명확해진다. 장애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는 전혀 명징하지 않다. 장애에 관한 정의는 각종 기구나 정부 기관들의 내부 규정에 따라 달라진다. 이 규정들은 장애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들에 대해, 그리고 장애운동 진영이 생각하는 장애의 의미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문화비평가 마이클 베루베는 이렇게 썼다. “자신을 ‘비장애인’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자기 규정이 일시적인 것일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교통사고나 바이러스 감염, 퇴행성 유전병 혹은 전례를 세울 법적 결정으로 우리의 위치는 언제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경될 수 있다.”(p.43-45)
※ 각국의 장애 범주 비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장애의 범주가 지나치게 좁은데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의 장애범주가 지나치게 좁은 것이 장애인을 낙인찍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범위를 의학적 모델에 입각하여 장애로 판정하는데 비하여 유럽 등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신체 및 정신적 장애 이외에도 사회적인 의미의 장애 즉, 포괄적인 장애 범주를 인정하고 있다.
* 스웨덴은 외국이민자, 타인 의존자 등의 사회적 장애도 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킴
https://brunch.co.kr/@kyounge35/5
[3] 장애인들의 “도둑맞은 삶"- 무수히 많은 자유가 박탈된다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한 시설이나 요양원, 지적장애인들 위한 중간 돌봄 시설에 들어가 있다. 자신의 집에 살면서 삶을 주도적으로 꾸릴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
미국에는 1만 6000개 이상의 요양 시설이 있는데, 그중 3분의 2는 영리 시설이다. 요양 시설은 116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되었다. 이는 완전히 악덕한 돈벌이 사업이다. [...] 장애인들이 집에 살 때 훨씬 적은 비용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 게다가 요양 시설의 서비스 수준은 대개 경악할 만큼 형편없다.
위생이나 심리적 욕구들이 무시될 뿐만 아니라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도 빈번히 일어난다. 가장 좋다는 시설들에서조차 바깥 사람들이 당연히 갖는 무수히 많은 자유가 박탈된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와 먹을 자유, 원하는 시간에 잠들 자유 그리고 서로 동의한 성관계를 가질 자유 등등이 말이다.[...]
무려 200만 명의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누구에게 활동보조를 받을지 결정할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지만, 장애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부재는 별로 놀라운 일이다. 이는 장애에 대한 표상이 미디어에 부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는 은유로서 미디어에 깊이 배어 있고, “감동 실화”로서 거의 신화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장애는 항상 개인적인 비극으로 간주된다. 장애인들은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기보다는 강인한 의지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용기를 찾아낸다고 상정된다. 많은 장애운동가와 연구자들은 이를 “슈퍼 불구” 서사라고 부른다. 장애인이 하는 것이라면 평범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상관없이 감동적이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간주하는 일 말이다. 결혼 하는 것, 학교에 가는 것, 단지 집 바깥에 나가는 것 혹은 자살을 원하는 않는 것까지(심지어는 자살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사실까지도) 모두 그렇다. 이러한 서사는 장애인들이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도록 고무하는 대신, 비장애인 청중들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처지에 감사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런 렌즈를 통해 장애는 빈민의 자수성가라는 익숙한 자본주의 서사의 초감성적 버전으로 거듭난다. (p.48-50)
※ 생각난 책들
④ 달나라 소년 - 특별한 아들을 이해하기 위한 아버지의 여행
이 책은 중증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아들의 와해된 삶―그리고 아들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의미와 목적을 갖길 열망한 한 아버지의 기록이다.
달나라 소년 -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 |
*** 워커가 훌륭한 공동체에서 전일제로 살게 된다면 비용이 1년에 최소한 20만 달러는 들 것이다. 워커가 쉰 살까지 산다면 총 비용은 800만 달러가 된다. 내게는 800만 달러라는 큰돈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온타리오 주의 인구가 800만 명이다. 워커는 온타리오 주에 사는 사람들 각자에게 1달러의 가치가 있을까? 밤이면 그런 계산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p.116
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 홀로 죽어도 외롭지 않다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쓴 싱글 3부작의 완결판이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혼자가 되는 이 시대에 집에서 홀로 맞는 죽음을 권하며, 직접 취재한 의료.간호.간병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가정간병을 실천하고 있는 일본의 실제 현장과 환자를 돕는 의료지원시스템, 병원 전문의들의 인식 변화, 사회보장제도의 현실 등을 살펴보고 있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 우에노 치즈코 지음, 송경원 옮김/어른의시간 |
⑥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저자 우에노 지즈코는 “살아 있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최근 10년 동안 노후에 대한 상식이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만족스런 노후를 보내기 위해 첫째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 둘째 돈 부자보다 사람 부자 되기, 셋째 타인에게 신세 지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이상 세 가지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가족이 없는 노후가 비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과거의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동양북스(동양문고) |
[4] 안락사에 대한 반론-동물의 의사를 확인할수 없는 상황에서 실행됨
‘안락사’란 원래 병이나 외상으로 인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동물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취 지에서 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의료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와 달리 동물의 ‘안락사’는 동물의 의사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행된다. 따라서 이것은 사실상 ‘안락살’에 가까운 매우 모순적인 행위가 된다.(‘안락’의 기준 자체도 인간이 세운 것이다.) (p.85. 역주)
[5] 동물윤리를 불구화해야 하는 이유 – 우리는 동물이다- 동물성은 나의 인간성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동물윤리를 불구화해야 한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장애 정치학을 적용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은 장애인과 비인간 동물 모두를 억압하는 공통의 체계와 이데올로기를 검토하는 것인데, 비장애중심주의가 언어 외의 다른 영역에서도 동물 억압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장애중심주의는 종차별주의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또한 비인간 동물들이 판단되고 분류되고 착취되는 방식에 대해 숙고해볼 때, 비장애중심주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인간의 동물 지배에 대한 정당화는 거의 항상 인간과 동물이 가진 능력과 특징에 관한 비교에 의존했다. 우리 인간은 언어, 이성, 복합적 감정, 두 개의 다리 그리고 다른 네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을 가진 종이다. 동물들은 이런 특징 및 능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책임 바깥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우리가 그들을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물을 어떤 능력을 갖거나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적이지 않은가?
이런 논의는 비장애 인간 신체뿐 아니라 신경전형적neurotypical 인간 지능이라는 전제에 입각한 것이다. “신경전형”이라는 말은 자폐와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커뮤니티에서 나온 용어로, 규범화된 인지 능력을 갖고, 종 전형적species typical이라고 간주되는 개인이나 특징을 가리킨다. 자폐증 연구 자이자 동물 옹호가인 대니얼 살로먼은 이렇게 썼다. “신경전형주의neurotypicalism는 전형적 신경을 가진(자폐증이 아닌)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특징적인 인지 과정을 특권화하는 반면, 자폐 성향이 있는 인간이나 비인간 동물들에게 자연스러운 다른 형태의 인지 과정은 최소한 암묵적으로는 열등한 것으로 간주한다.”
[...] 장애학 연구자 해럴드 브래스웰이 설명하듯, “장애를 가진 사람을 소외시키는 비장애 개인이라는 개념은 동물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신앙부터 인간이 진화의 정점이라는 믿음까지, 비장애중심주의는 우리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다. 비장애중심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이 의심의 여지없이 동물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동작, 사고, 존재 방식이 동물들보다 정교할 뿐 아니라 우리를 [동물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든다는 생각에 불을 지핀다. 열등한 야만 상태에 있는 동물은 별다른 윤리적 고려 없이 이용될 수 있다. 동물을 연상시키는 인간들(유색인종, 여성, 퀴어, 빈민 그리고 장애인 등)또한 지적으로 모자라고, 가치가 적은 존재로, 때로는 심지어 인간 이하의 존재나 비인간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특정한 능력이나 역량들이 인간을 정의할 때 핵심 요소가 되고, 인류와 나머지 동물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 된다. 이런 식으로 비장애중심주의는 동물과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인간으로 여기는지 구체화한다.
비장애중심주의는 또한 동물의 고통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키는 가치 및 제도들을 조장한다.
(p.118-121)
나는 내 형상 속에서 동물을 느낀다. 이 느낌은 교감의 일종이지 수치심이 아니다. 나의 동물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비규범적이고 상처 입기 쉬운 몸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를 움직이고, 보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동물화된 부위와 움직임에 대한 주장이고, 내 동물성이 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동물성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우리가 동물 같다거나 동물이라는 관념이 “우리가 누구인지” 를 정의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두 주장 모두 맞지만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바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루할 정도로 당연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p.208-209)
[6] 다름에 대한 가치 부여 - 장애가 아우르는 다양성 자체가 가치 있는 것
장애학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비장애중심주의에 저항하며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동시에 동일함을 인식하고자 한다. 장애인들은 평등과 동일함을 위해 싸웠지만, 우리의 차이와 제약들 역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운동가들은 장애인이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장애가 아우르는 체현embodiment, 인지cognition, 경험experience의 다양성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다.
장애에는 결핍과 무능의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다르게 알고, 존재하고, 경험하는 방식들을 양성하는 일이기도 한다. 다름otherness에 대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런 가치 부여는 장애 문화를 동물 정의 관련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동물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보다 훨씬 더 우리와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극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종들 사이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포용되고 소중히 여겨져야지,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p.123)
장애학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불구의 시간crip time”이라는 개념을 오랫동안 이론화했다. 불구의 시간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고 우리의 시간 감각이 경험과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작가이자 장애운동가인 앤 맥도널드는 자신의 시간 감각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삶을 슬로우 모션으로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나의 생각은 여느 사람만큼이나 빠르고, 동작은 약하고 불규칙하며, 말은 유사 속 달팽이보다도 느리다.”
장애는 속도 조절 그리고 진전에 대한 다른 감각을 조성하며, 때로는 수명에 대해서도 다른 감각을 조성한다. 옷을 입거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우리에게 시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 극심한 지적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나 매우 다양한 동물들의 시간은 어떻게 다시 개념화될 수 있을까? “불구의 시간”에서 우리가 “동물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도약하기는 쉽다. 수명이 오직 몇 시간, 며칠, 몇 주인 종들은 확실히 100~200년을 사는 종들과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질 것이다. 싱어의 시간 개념은 진보와 미래 지향적인 목적이라는 서구적 통념에 기초하는 반면, 불구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이란 가변적이며 실제로 우리의 신체 형태와 함께 바뀌고 있다고 문제 제기하도록 한다.(p.231-232)
[7] 새로운 식탁 사교를 위하여 - 예절보다 식탁에 있을 권리, 비가시화 되지 않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
[...] 다수의 장애인에게는 저녁 식탁에서의 예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저녁 식탁 에 있을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설령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폴란은 처음부터 당신이 식탁에 앉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 청중들을 둘러보며 나는 이 식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장애, 인종, 성별, 소득 때문에 동물윤리와 지속 가능성 관련 논의들에서 너무나 자주 비가시화되는 사람들 말이다. (p.259-265)
고인이 된 역사가이자 장애학자 폴 롱모어 Paul Longmore는장애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가치 체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농인과 장애인들은 프라이드 선언을 넘어 스스로의 경험에서 얻어낸 대안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만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급자족 능력 self-sufficiency이 아닌 자기결정 self-determination을,자립independence이 아닌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을, 기능적 분리functional separateness가 아닌 개개인의 연결personal connection 을, 신체적 자율성physical autonomy 이 아닌 인간 커뮤니티 human community를 존중한다고 선언한다." 장애의 이러한 "가치"는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나는 이런가치들이 인간을 넘어 확장되는 것을 그려본다. 단지 인간의 상호의존, 행위 능력, 커뮤니티만이 아닌 인간, 동물, 환경 모두의 그것까지 추구하는 해방의 길을 창조하면서 말이다.p.253
[8] 페미니즘적 (상호의존적) 돌봄 윤리 - 돌봄받았던 존재들은 관계, 사회, 더 넓은 사회에서 핵심적 참여자이자 공헌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전부터 상호의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의존적인 이들”을 돌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여성들, 특히 유색인 여성들의 부담이 되었던 방식을 비판하든 아니면 돌봄의 윤리(돌봄이 우리의 정의 개념 안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방식)에 주목하든, 페미니스트들은 인간(그리고 종종 비인간)을 서로에게 기대는 상호의존적 존재로 이해해온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 트 이론은 돌본다는 것의 의미에 심혈을 기울인 데 비해, 돌봄받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다루지 않았다.
[...] 역사적으로 장애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돌봄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 대신 권리와 서비스, 나아가 장애인들의 참여와 기여를 제한하지 않는 접근성이 확보된 사회를 원한다고 선언해왔다.
지난 수년간 페미니스트 장애학 연구자들과 이런 복잡한 문제들에 다리를 놓고, 돌봄 대상자와 돌봄 제공자 모두의 가치 및 억압적인 역사를 인식하는 돌봄 이론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작업에서 고려된 측면 중 하나는 돌봄받을 필요가 있다고 역사적으로 간주된 사람들(즉 “의존적인 자들” 내지는 “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이 맺는 관계, 사회 그리고 더 넓은 세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물에 대한 페미니즘적 돌봄 윤리는 동물과 인간이 상호의존의 관계 안에서 서로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종종 취약하고 의존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 페미니즘적 돌봄 윤리라는 틀에서 의존은 억압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정당화를 반대한다. 애덤스와 도노반은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가축화된 동물들은 생존의 대부분을 인간에게 의존한다. 즉 불평등을 인식하는 윤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동물 옹호가들이 동물들을 단지 취약한 희생자로(그리고 자신들을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로) 간주했지만, 이와 달리 페미니즘적 돌봄 윤리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의 핵심적 참여자이자 공헌자로서 가축화된 동물의 행위 능력에 주목함으로써 해방적 틀을 제공한다. 이 틀은 의존 개념을 다층화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다.
[...] 비슷한 맥락에서 철학자 로리 그루엔은 우리에게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감에 관한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비인간 동물들에게 공감하는 방식이 단지 동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개별 동물이 원하고 필요로 하고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바를 고려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촉발한다.
그루엔은 이렇게 쓴다.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는다는 건 부분적으로 타자의 필요, 이해관계, 욕망, 취약성, 희망, 관점을 이해하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것과 관계된다. 이때 이해와 응답이란 단순히 자기 관점에서 그것들에 대해 추측하거나 확신하는 바를 정립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해와 응답은 타자의 관점에서 그것들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이런 감정들은 지적장애가 있어 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에 집중하는 장애 이론 및 운동과도 중요한 유사성을 공유한다. [...] 개인에게 다가가 그 사람의 고유한 소리와 몸짓에 주목하는 일은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에 관한 논의를 진전 시키는 결정적인 한걸음이 된다. 고통과 의존이라는 제한된 서사를 넘어서 더 급진적인 논의, 즉 인간과 동물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사회에 접근성이 확보된 반차별적인 공간을 창조하겠다는 그런 논의로 나아가는 한걸음 말이다 (p.344-348)
다음에 토론할 책입니다.
https://f-reading.tistory.com/422
모임운영: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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