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토요일 오전 합정동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 토론했습니다. 이 책은 생물학자였던 데비드 스타조던의 평전이면서 일부분은, 저자의 개인적 회고록이기도 하고 일부분은 일부 도덕적 교육/철학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으로 하는 두번째 토론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새로 유럽의 68혁명과의 관련성 등 사회적, 역사적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 신을 상정한 위계적 세계관이 아닌, 현대과학이 발견한 관계론적 세계관과, 이와 맥을 같이하는 불교철학, 현대과학이 발견한 과학적 진실 그리고 이것과 불교적 세계관과의 연관성, 과학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리한 내용은 논제의 제목과, 논제의 발췌문 중 일부, 그리고 인상깊었던 부분의 원문, 캐럴 계숙 윤의 책과 기사, 불교의 연기론을 통해 생명과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책에 대한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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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일시 : 7.23 (토) 오전10:00 ~ 오후 1:00 ■ 장소 : 대안연 강의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우주의 혼돈과 질서에 대한 이야기"
과학자인 아버지는 저자 룰루 밀러에게 늘 "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의 탄생은 혼돈일 뿐, 우리의 삶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 무의미에 발을 딛고 오히려 작은 것 안에 있는 장엄함을 발견하며 행복을 향해 마음대로 걸어나가라고. 안타깝게도 밀러에게 이 말은 삶의 동력이 되지 않았고 무의미의 블랙홀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는 평생을 바쳐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이고 또 붙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를 발견한다. 우주의 혼돈이 아무리 방해공작을 펼쳐도 끊임없이 질서를 부여해가는 그의 삶에서 밀러는 어쩌면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엔 밀러가 추적한 데이비드의 삶의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펼쳐진다. 작고 쓸모없는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가 어쩌다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30년 평생을 바친 이 표본들이 강한 지진 한 번으로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 그가 좌절 없이 바로 재작업에 착수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밀러는 데이비드의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서 여러 심리학적 연구들까지 분석하며 그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책의 중반 이후부터 데이비드의 삶은 충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밀러는 충격과 혼돈 속에서 결국 아버지의 말을 반박할 자신의 진리를 찾아낸다.
<출처-알라딘 책소개>
영어 원문을 볼수 있는 곳
목차
1. 이 책에 대한 소감
이 책은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가 2020년 출판한 자전적 논픽션 에세이입니다. 평생을 분류학 작업에 헌신한 데이비드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무의미함과 상실, 그리고 무기력을 극복할 단서를 찾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의 세계를 깨뜨리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범주나 질서 또는 기준이나 척도에 도전할 놀라운 발견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책을 읽으신 소감과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 마지막 10%를 남겨놓고 큰 반전이 일어나는데, 한편으로는 그 90%를 읽느라 애썼던 것이 아깝기도 했다.
우생학에 근거하여 불임수술 등이 이루어진 것이 생각보다 최근까지의 일이어서 놀랐다. 과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과학 철학이 필요하다. 과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 오랫만에 몰입해서 읽었다. 애나와 메리의 이야기에서는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생각이 났다. 밝혀진 것만 그정도이고 나오지 않은 피해자도 많을 것이고, 밝혀지지 않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 나의 경우 뒷부분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흥미로웠다. 데이드 스타 조던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동화되어 읽었다.
▶ 저자의 글의 구성솜씨가 돋보였다. 연극의 막과 장같은 구성으로 내용이 임팩트있게 전달되게 내용을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 문학적 수준이 높은 에세이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고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기에,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제시해야만 현대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 1700년대 계몽주의 시대부터 과학의 시대가 시작되고, 자연을 낱낱이 분해하는 방법론으로 과학탐구가 이루어지며, 위계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아가시와, 데이비드 조던의 태도가 바로 그러한 것인데
- 이 책은 이러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를 하나하나 들추어 나가고 있다.
2. 아가시의 연구 방법론/ 종교적 텍스트로서의 자연의 위계질서
아가시는 [...] 가장 먼저 빙하기 이론을 지지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화석과 기반암의 긁힌 자국들을 꼼꼼하게 관찰한 후 자신만의 빙하기 가설을 세웠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면밀히 조사하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책이 아니라 자연을 공부하라”가 그의 모토였고 학생들을 죽은 동물들과 함께 벽장에 가둬두고 “그 대상들이 담고 있는 모든진실”을 발견하기 전까지 벽장에서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p.79-82)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아가시는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다. 자연에 도덕률-위계, 완벽함의 사다리 혹은 “등급”-이 감춰져 있다는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꼭대기에는 인간이 있고,이어서 동물과 곤충과 식물, 바위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체상에 모든 생물을 하등한 생물부터 신성한 생물까지 차례로 배열할 수 있다는 “신성한 사다리”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구상했고, 후에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자연의 사다리“라는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아가시는 생물들을 제대로 된 순서로 배열하면 신성한 창조주의 의도뿐 아니라 어쩌면 더 진보할 방법에 관한 실마리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아가시는 “구조의 복잡성 혹은 단순성” 또는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의 특징” 같은 것이 생물의 객관적 척도라 믿고, 그 척도를 사용해 생물의 등급을 매겼다. 예를 들어 도마뱀은 “자손들을 더 많이 보살피기” 때문에 어류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기생충은 모두 싸잡아 단연코 하등한 생명 체다. 기생충이 생명을 이어가는 방식을 보라. 빌붙고, 속이고, 더부살이하지 않던가.
그러나 아가시는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피부 아래 감춰져 있다고 믿었다. [...]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것이다. 내부야말로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 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 (p.98-102)
아가시가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
이렇게 아가시는 자연을 하나의 종교적 텍스트로 제시했다. 가장 둔한 민달팽이나 민들레조차 그것들을 들여다볼 만큼 호기심이 충분한 인간에게는 영적 ․ 도덕적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 그 모든 메시지를 한데 모으면 정교하고 핵심적인 신의 계획이라 부를 만한 형상을 얻게 된다. 그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한 풍부한 우화로 이루어진 신의 설명, 모든 생물의 순위만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일련의 도덕률로 쓰인) 상승을 향해 가는 도로 지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p.103-105)
3.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말한 존재의 무의미함과 조던의 가르침의 공통점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
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 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마치 이 세상을 덮고 있던, 깃털을 넣어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p.296-298)
https://f-reading.tistory.com/221
제3장 최초기 불교의 사고방식
1. 삶에 대한 허무주의
◾윤회적 생존이란
• 깨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번뇌와 괴로움이 소용돌이치는 윤회의 세계에서 해탈하는 것,
열반은 그것에 의해 얻어진 평안과 적정의 경지(근본적으로는 염세를 촉구하는 가르침이 됨)
• 숫따니빠따를 보면 자신의 윤회적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함 ‘윤회적 생존’이란 자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는 뜻(근본적으로는 염세를 촉구하는 가르침이 됨)
• 탐욕(라가, 바라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 쾌감을 바탕에 둔 행위의 기동력),
성냄(도샤, 바라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것, 불쾌감에 바탕을 둔 행위의 기동력),
어리석음(모하, 갈애나 무명과 같은 의미로 취급하는데 근원적인 목마름 이라는 뜻, 근원적인 생존에 대한 욕구)가 번뇌의 근원
• 그런데 생존에 대한 욕구가 있는 이상 탐욕과 성냄에 포함되는 번뇌 집착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궁극의 목표
•불교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삼는 것은 생존에 대한 욕구를 끊는 것= 나는 ‘삶에 대한 허무주의’라 부르고 싶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떠한 의미도 찾아내지 못하고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는 것 p.163
•존재론적 허무주의가 아닌 의미론적, 가치론적으로 허망하다고 말하는 것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 석존은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 도달했다고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즉 석존은 어떠한 사정이 있어 소위 불가항력적으로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지향'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여 도달한 것이다. 따라서 석존에게 살아갈 의욕이 사라졌다'고 해도 절망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오히려 거기에 있는 것은 고요한 평온이다. 생존에대한 욕구에서 생겨나는, 혹은 생존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번뇌가 소멸된 경지, 즉 적정한 열반(닙바나, 니르바나)이다.(p169)
• 그런데 자이나교의 해탈자는 차치하고, 석존과 많은 불제자들은 생존에 대한 욕구를 그러한 생리적인 형태로 끊었던 것은 아니다. 석존이 고행을 버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생존에 대한 욕구를 끊는다'는 것을 자이나교가 아닌 석존, 즉 불교에 입각해서 보면, 문자 그대로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를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억제하는 지극히 안정된 심리 상태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p171)
4. ‘긍정적 착각’의 장점과 단점
5. 우생학과 그것의 열렬한 추종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6. 민들레 법칙
그날 거실에서 [...] 애나가 수용소에 들어간 일, 학대당하고 강간당한 일, 정신지체자 취급을 당한 일, 진흙탕로 밀쳐진 일, 턱이 부러진 일, 자신의 생식기를 절단당한 일에 관해 듣고 난 다음, 나는 애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왔던 질문이다. [...]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지!”
애나가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물론이지. 메리 때문이야.”
[...]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게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 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것. 이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 그게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넘어지지 않게 꼭 붙잡으시라)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 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p.515-526)
p. 226~228
p. 222
I had asked Anna a stupid question as I sat with her and Mary in their living room that morning. A selfish and indulgent question. After she had told me tales of her internment, of her abuse, of her rape, of being called retarded, of being pushed in the mud, of her jaw being broken, of her reproductive organs being mutilated, I had asked her: "How do you go on?"
It was the question I'd been asking of everyone, in a way, for my whole life. It was the reason I'd spent so many years researching David Starr Jordan's life; it was the question I'd asked my father when I was a little girl; it was why I'd been so reluctant to let go of the curly-haired man, his mesmerizing way of pulling laughter from the cold earth. That levity was the quality I wanted to be near, the substance I wanted to learn how to manufacture in myself, the recipe that, as far and wide as I searched, I seemed unable to find.
Anna looked at me, unsure. She began to think about it. I looked at the plants to give her some space.
Finally, Mary jumped in. “Because of me!" Anna started laughing. Sure. Right. Of course. "Because of Mary."
It was a joke. Mary's way of saving us all from my misstep. But the more I thought back on it, the more I began to wonder about its truth. I thought back on their apartment, the matching La-Z-Boys, the matching parakeets, the matching glasses of iced tea. The doll, propped up on the couch. The hamster whirling in its cage. I started to see this thing I had not consciously noticed as I was sitting there. This sort of invisible thread between the two women. How vigilantly they tend to each other, swatting away the other's sadness, volleying back every joke, laboring to keep the atmosphere light.
All these years later, Anna is still taking care of Mary. It is Anna who answers the door, Anna who fetches Mary a drink, Anna who waters the plants because Mary's knees ache too much to stand. It was Anna who set up Mary with her current boyfriend, Mike. Though Anna is the smaller one now, the more timid one, though she lacks so many of the successes that Mary has come to accrue (the child, the grandchildren, the quick sense of humor, the endless string of romances), Anna is still Mary's protector. She is still pushing her on the proverbial swings, trying to thrill her with whatever humble delights she can tug out of this earth-gravity, iced tea, hamsters.
And Mary. You can see, in nearly every interaction, how grateful she is. She does not judge her friend for loving a doll. Instead, she bolsters that love. Mary pointed to a colorful, beaded necklace hanging around the doll's neck. "I made that!" she said. I pictured Mary, alone in her room, quietly stringing bead after bead up a nylon cord, carefully preparing this surprise for her friend. You get that she is forever repaying the debt of Anna's protection at the Colony. That she finds real meaning in paying it back.
As I kept driving, the sky beginning to plump with darkness, I realized they had shown me evidence of other threads, too, threads that spun out far beyond the walls of that apartment. They had told me about a woman named Gail from their church who stops by a couple of times a month to cook dinner for them, to help with the bills, to chat. They told me about Mary's stepson, Josh, who sends them funny texts nearly every day.
About a lawyer named Mark Bold who fought for years to get Anna financial restitution for being sterilized, finally winning her $25,000 and refusing to accept a single cent for his efforts. They told me about their neighbor Grant, who waves at them from his balcony each morning. About the receptionist at their apartment complex, Ebony, whom they call their "guardian angel" because she pulled so many strings to get them into their unit after the cyclone destroyed their trailer. I remembered that when I had checked in at the front desk, Ebony's eyes had lit up when she heard who I was there to see. "Ahhhh," she said, "those are my sweethearts!" She pointed to a series of Anna's drawings taped over her desk. A sleepy puppy. A blushing fox. She said they've been showering her with gratitude since the moment they walked in the door. She says she doesn't deserve it, really, but it's a welcome break in her long, complaint-ridden days.
Slowly, it came into focus. This small web of people keeping one another afloat. All these miniscule interactions—a friendly wave, a pencil sketch, some plastic beads strung up a nylon cord—they might not look like much from the outside, but for the people caught inside that web? They might be everything, the very tethers that keep one bound to this planet.
That was what was so maddening about the eugenicists. They failed to even consider the possibility of a web like this. They failed to consider the tangible ways in which people like Anna and Mary might be enriching the society around them, reflecting more light back into it, strengthening it. Mary is not sure she would have survived the Colony without Anna. Well, that. That was something. Was it not? The difference between life and death. Did that not count for something?
And that's when it hit me. That it was not a lie to say that Anna matters. Or that Mary matters. Or that-hold on to your seat-you matter, Reader.
It wasn't a lie to say so, but a more accurate way of seeing nature.
It was the dandelion principle!
To some people a dandelion might look like a weed, but to others that same plant can be so much more. To an herbalist, it's a medicine—a way of detoxifying the liver, clearing the skin, and strengthening the eyes. To a painter, it's a pigment; to a hippie, a crown; a child, a wish. To a butterfly, it's sustenance; to a bee, a mating bed; to an ant, one point in a vast olfactory atlas.
And so it must be with humans, with u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tars or infinity or some eugenic dream of perfection, sure, one human life might not seem to matter. It might be a speck on a speck on a speck, soon gone. But that was just one of infinite perspectives. From the perspective of an apartment in Lynchburg, Virginia, that very same human could be so much more. A stand-in mother. A source of laughter. A way of surviving one's darkest years.
This was what Darwin was trying so hard to get his readers to see: that there is never just one way of ranking nature's organisms. To get stuck on a single hierarchy is to miss the bigger picture, the messy truth of nature, the "whole machinery of life." The work of good science is to try to peer beyond the convenient" lines we draw over nature. To peer beyond intuition, where something wilder lives. To know that in every organism at which you gaze, there is complexity you will never comprehend.
As I kept driving, I pictured all the dandelions in the whole wide world nodding their heads in unison at me finally getting it, waving beyond my wheels, shaking their yellow pom poms, cheering me on. At long last, I had found it, a retort to my father.
We matter, we matter.
In tangible, concrete ways human beings matter to this planet, to society, to one another. It was not a lie to say so. Not a sappy cop-out or a sin. It was Darwin's creed! It was, conversely, a lie to say only that we didn't matter and keep it at that. That was too gloomy. Too rigid. Too shortsighted. Dirtiest word of all: unscientific.
I gave the steering wheel a little tap. My fingers felt lighter on the vinyl, more in command of the life they steered. But there was still the problem of what I was driving toward, what we all were driving toward, in our cars with our headlights and our hope. That same empty horizon. I was still sure that our ruler was uncaring and cold, that waiting around the corner for each of us was precisely nothing. No promises. No refuge. No gleaming. No matter what we did or how much we mattered to one another.
But that was because I hadn't yet come to understand the final chapter of David's story. An existentially shocking surprise ending waiting in the wings.
7. 과학의 발전에 따른 결론 –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친연성(親緣性)에 따라생물을 분류함으로써 작동시킨 그 과정이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p.546-547)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 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563-564)
이러한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
“캐럴 계숙 윤은 J.B.R.이라는 환자의 신기한 사례에 관한 글을 썼다. J.B.R.은 1980년대에 헤르페스 바이러스 뇌염으로 뇌가 부은 뒤 범주 짓기를 담당하는 신경학적 구조가 손상되었다. 다시 깨어난 J.B.R.은 갑자기 자연 세계의 기본적인 범주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그건 말 그대로…혼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생물 세상의 범주는 아주 멀쩡했다. [...] J.B.R.을 비롯해 그와 증상이 비슷한 환자들의 사례[...]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메커니즘이 우리 내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자연을 분류하는 방법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믿은 체계를 획득할 수 있는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누가 한 부류에 속하고, 누가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하며, 누가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는지 등을 판단하는 분류법을 말이다. 또 다른 연구들은 우리가 이런 직관적인 규칙들을 얼마나 일찍부터 따라왔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람은 생후 4개월째에 이미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직관적 질서가 우리 내부에 장착된 장치의 일부라는 사실이 그 질서가 진실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질서가 유용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질서가 우리 인간 종이 우리를 둘러싼 혼돈을 성공적으로 항해하고 탐험하도록 도움으로써 수 세대에 걸쳐 기여해왔다는 뜻이다.”(568-569)
뉴욕타임즈 기사- Reviving the Lost Art of Naming the World
https://www.nytimes.com/2009/08/11/science/11naming.html
필자는 병으로 자연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J.B.R 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럼으로써 그가 자연과 자신을 사이의 연결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점점 J.B.R처럼 되어 간다고 하면서 동,식물의 명칭을 공부해보라고하고, 아니면 자기 나름의 이름을 붙여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자신 사이의 연결을 회복시켜보라고 한다.
8. 물고기 혹은 범주 만들기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
이제는, 침대 위 에메랄드색 눈의 아내 곁에 누워 있을 때 총이 떠오르면-그렇다. 그건 여전히 떠오르고, 아마도 언제나 떠오를 것이다-나는 총이 주는 것들을 헤아려본다. 그것이 가져다줄 수 있는 해방, 그날의 스트레스와 내가 망쳐버린 것들에 대한 해결책, 수치의 종말에 관해. 그러다가 물고기에 관해 생각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혜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을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그러면 세계는 조금 더 벌어지며 열린다. 그리고 나도 다윈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우리의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볼품없는 박테리아는 어쩌면 당신이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을 그 단단한 가장자리에서 마지못해 뛰어내리게 했던 실연은 결국 더 좋은 짝을 찾게 해준 선물로 밝혀지게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꿈들까지도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p.615-620)
그 “질서”라는 단어도 생각해보자. 그것은 오르디넴ordinem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베틀에 단정하게 줄지어 선 실의 가닥들을 묘사하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는 사람들이 왕이나 장군 혹은 대통령의 지배 아래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은유로 확장되었다. 1700년대에 와서야 이 단어가 자연에 적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연에 질서정연한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추정-인간이 지어낸 것, 겹쳐놓기, 추측-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가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p.626-627)
[9] 참고도서
(1)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 유선경.홍창성 지음/운주사 |
① 생명과 환경이 보여주는 연기(緣起)의 진리
https://k-buddhismandculture.blogspot.com/2021/11/blog-post_46.html
붓다가 성도(成道) 당시 깨달았다는 진리가 연기의 법칙이다. 붓다의 연기법(緣起法)이란 다음과 같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며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며 저것도 소멸한다.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조건에 의존(緣)해서 생겨난다(起)는 뜻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도 연기하며 생성되고 소멸한다. 붓다의 연기법은 생명현상을 꿰뚫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② 책의 내용 요약 - 장별
이 책의 논의는 크게 여섯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첫 주제인 ‘I. 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에서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연기, 무상, 공, 깨달음, 그리고 자비의 가르침을 설명하면서 이 가르침들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연기법과 그로부터 도출된 불교의 가르침이 존재 세계를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일부인 생명현상도 꿰뚫는 가르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주제인 ‘II. 생명과학과 깨달음’에서는 과학이론의 교체가 마치 정치체제의 근본적 교체와 같이 혁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생명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서구적인 본질주의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연기와 공의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주제인 ‘III. 개체’에서는 생로병사의 실존적 문제를 생명과학 안에서 구체적인 예를 통해 논의한다. 생로병사라는 현상을 생명과학적으로 고찰하다 보면 결국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관조해 보면, 생로병사가 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변화 과정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불교적 생명과학이 주는 통찰로도 우리가 생사生死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넷째 주제는 ‘IV. 종種’이다. 여기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소개하면서 생명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어져 온 고유한 본질을 가졌다는 종의 존재에 대해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다윈 스스로도 종에 대한 본질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명과학자들이 보고해 온 종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종과 관련한 생명현상도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해해야만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섯째 주제인 ‘V. 유전자’에서는 유전자 개념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유전자의 개념이 역사상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분자생명과학이 전제하는 DNA 분자로서의 유전자 개념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논의한다. DNA 분자들이 생명현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유전자 중심 결정론은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수정 보완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섯째 주제는 ‘VI. 진화’로서, 먼저 진화란 향상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라는 다윈의 주장을 설명하면서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불식시킨다. 그리고 진화와 관련된 섬세하고 진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다윈이 해결하지 않고 과제로 남겨 놓은 두 가지의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불교가 지난 2,500년 동안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보여주면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17. 유전자의 불교적 이해 1 223
이번 호에서 필자들은 유전자 개념이 실현되는 물리적 속성들을 추상적 차원의 일반적인 논의에서는 분자망(分子網, molecular net)으로 이해하고, 실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유전자 개별자의 인과적 역할을 수행하는 물리적 토대는 분자 네트워크(molecular network)로 보자고 제안한다. 구체적인 분자 네트워크도 기능에 기반을 둔 개념이어서 유전자 개별자의 기능에 관계하는 분자들과 그들 간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렇게 기능하는 분자 네트워크는 그때그때 주어진 조건들에 의해 연기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분자 네트워크는 분자망의 부분으로 이해하며, 분자 네트워크가 연기하는 현상이듯이 분자망 또한 연기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겠다.
[...]
유전자 개별자와 분자 네트워크 239
‘분자 네트워크’는 분자선상에서 다양한 분자들과 그것들의 관계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 또는 단어에 불과하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분자 네트워크’라는 것은 어떤 집합체가 새로 창발되어 이 세상에 따로 존재하게 되고 또 어떤 고유한 본질을 그것의 속성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집합체를 구성하는 부분들과 그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괄적으로 그러나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주는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02) Naming Nature: The Clash Between Instinct and Science Paperback – August 2, 2010
책 요약
생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Carol Kaesuk Yoon은 우리를 속과 종을 넘어 깊은 인식으로 이끌며, 생명체에 이름을 붙이려는 우리의 추진력을 드러낸다. 그녀는 과학자들이 살아있는 세계의 이름을 짓고 싶은 충동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그들이 그것에 의해 움직이면서 말이다.
말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 네이처 네이밍은 시스템이 취미에서 과학으로 분류를 바꾼 린네와 경직된 종 정의의 아이디어를 끝낸 다윈이 지구의 모든 종에 이름을 붙이고 온라인에 등재하려는 오늘날의 꿈에 이르는 풍부한 네이밍 여정이다.
독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보게 될 것이고, 과학적인 이름보다는 익숙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자연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절박함을 느낄 것이다. 자연을 명명하는 것은 우리가 고래가 우리 세계에서 그것의 중요성을 아는 한 물고기가든 포유동물이든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밝혀준다.
모임운영: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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