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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깨달음과 역사

4월 - 윤회와 해탈

by 책이랑 2020. 10. 27.

불교철학은 윤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함으로써 답을 준다. 

불교는 세계의 원리로 윤회가 아닌 연기(緣起)를 말한다.
이 세상은 윤회하는 주체가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변화의 연속(불꽃)이다.

윤회의 실상 그대로를 온전하게 수용하고
창조적인 의지로서 역사의 변화를 통찰 활용할 것을 말한다.

 

 고대인도 윤회 불교 (緣起)
윤회 - “생명은 한번 죽음으로써 그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끝없는 재생을 하게 된다”
- 고대 인도의 종교 사상,  B.C.6세기쯤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사상
- 연기(緣起)의 가르침:‘변화와 관계성의 법칙’
개체를 불인정 하므로 윤회는 성립되지 않음, 변화와 관계임.

- 독자적이고도 불변하는 실재성(實在性)을 인정하지 않음
관계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존재 양태이므로 개체적 삶의 동질성을 계속해 가는 ‘나(我)’라는 것은 성립불가능


( 기존의 윤회 사상을 적극적이면서도 새로운 의미로 수용한 것)
- ‘나’라는 주체에 얽매이지 않고도 부단한 경험과 실천을 이룰 수 있슴
(도덕적인 인과율과 과학적인 인과율에도 부합하는 삶의 길) 
삶이란 괴로움의 나날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삶도 그러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재생도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으므로
현재의 삶도 되도록 원만히 마감하고 더이상의 재생도 원하지 않게 된 것

괴로움의 이유는 존재가 항상 지속되기를 바라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
- 밤새도록 타는 불꽃과 같이,  (윤회의 주체가 없으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변화의 연속임
but 주체가 없다 하여 인과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님
- 벼의 씨앗이 비와 햇볕과 물로 인해 싹으로, 꽃으로, 열매로 되면서 다른 이름,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일정한 인과의 동질성을 갖는다.
 고행이나 제사, 기도와 같은 특수한 종교적 수행을 통해 해탈(모크샤)을 성취하는 것이 목표 →  윤회의 실상 그대로를 온전하게 수용하는 것
(수행에 대한 오해: 수행의 핵심은 각종 행위나 심리 상태를 종식시키고 축소시키는 것이 아님)
불교에서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번뇌는 바로 ‘나’라는 실재 의식 
- 창조적인 의지로서 역사의 변화를 통찰, 활용



 " 첫째로 팀의 해체가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토록 비극적 사건은 아니다. 다섯 선수가 함께 뛰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종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해석으로, 미네소타 드래곤즈는 해체되지만 각 선수들이 시카고 불즈와 뉴욕 닉스 등 다섯 개의 팀으로 옮겨가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한 팀이 해체된 대신 다섯 개의 다른 팀들이 새로 선수들을 영입하여 활력을 얻어 경기를 펼쳐 나갈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은 여러 팀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 팀의 해체 즉 한 개인의 죽음이 자연과 인간세계에서 연기의 과정을 통해 오랜 시간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많고 적은 긍정적, 부정적, 물질적, 심리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연기의 한 과정으로서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존재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연기의 그물을 따라 한 개인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가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사건들은 분명 가슴 벅찬 현상들이다. 그리고 생사를, 연기의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존재세계 전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퍼지게 해나가는 기회로 간주하고 삶과 죽음을 그렇게 십분 이용한다면, 그것은 정말 극도로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불교가 허무주의가 아님이 분명하지 않을까. -홍창성 ■"

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0

 

불교평론

현응 스님의 열두 편지와 여섯 독자의 에세이* 유선경/지성훈/백경민/피터김/구기성/홍창성 이 에세이를 쓰는 인연지난여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지역에서 불교 공부를 원하는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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