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삶이나 역사(시간, 공간)를 초월한 그 어떤 영역(성스러운 것) 도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함
- 삶이나 역사의 갖가지 문제는 자체의 속성을 잘 통찰함으로써 올바른 해결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 불교 용어- 삶의 문제를 공정하고도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창출된 논리적 언어
고착화 되고 전도되며 심하게는 절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부처’ ‘깨달음’, ‘진리(法)’라는 말까지도 절대화시키거나 신비화시키면 안된다.
▶‘무엇이 으뜸가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에
달마 스님은 ‘성스러운 진리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廓然無聖)’라고 대답.
- 이 세상을 일사불란하게 설명하고 이루어 나가는 가치 체제로서의 ‘그 어떤 진리’,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다른 사상에서 볼 수 없는, 이 세상을 가장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법’이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오류
- 그러한 법은 없으며 그러한 가치 체계로서의 진리도 없다
▶ but 어떤 ‘법’을 추구하는 감정은 대단히 뿌리깊은 미망에 근거해 있다.
-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이러한 생각을 아주 오래 전 원시인 시절부터 인간들이 가졌던 의식구조라고 말하고 있지요. 곧, 사람들은 일회적이고도 단면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행위(俗의 영역)는 초월적이고도 성스러운 원형적인 영역(聖의 영역)을 상정하는 경향이 였슴. (역사의 무의미성에서 벗어나 영원성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역사의 흐름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십우도의 잘못된 해석: 마음이나 성품, 욕망 따위로 비유된 상징적인 ‘소’를 찾아 여러 단계의 훈련 과정을 거쳐 순화 정제하여 완전히 길들이는 것
▶ 그러나 바른 해석은 ‘소가 소 아닌 줄깨닫는 이야기’
- 그 소가 사실은 실체가 없음을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도를 성취
대상으로서의 ‘소도, 찾는 주체로서의 소년 자신도 모두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일,
▶ 불교는 삶이나 역사(시간, 공간)를 초월한 그 어떤 영역도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함
- 삶이나 역사의 갖가지 문제는 자체의 속성을 잘 통찰함으로써 올바른 해결을 구할 수 있는 것이지 삶의 무대 밖에서 신이나 성스러운 영역을 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삶과 역사 밖의 성스러운 영역이나 가치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교의 인식은 종교적 인식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 역사 속에서도 절대적이고도 온전한 진리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인 인식이라 할 수 있읍니다.
▶ 불교도의 역사관은 역사속에서 미완의 상태로 불교도에 의해 실천되고 검증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 부처님도 ‘이러한 가르침(성스러운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을 듣고도 놀라거나 불안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희유한 일일 것’이라 함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설정하지 않고서도 병폐 없이 역사의 삶을 꾸려가는 일
- 구체적 방편바라밀(구체적인 역사적 방법론과 행위)에 이르는 논리적인 통로가 있는 것은 아닙
변화해 나가는 역사의 모든 상황과 실상을 통찰하고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과 소신있는 실천적 노력(보살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 그러나 현재 우리는 안경조차 없는 열려진 시각은 고사하고 온갖 빛깔이 겹치고 또 겹쳐 검게 된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우리는 붉은 빛의 막을 벗겨내고, 푸른빛을 벗겨내고, 차례로 빛깔을 하나하나 벗겨내어 무색투명한 안경을 만들고 난 뒤에 비로소 안경을 벗어던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단숨에 벗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 무엇인가를 찾아 행각 길에 나선 사제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옛 선사의 시 한편을 부칩니다.
존재의 속성을 알아 생활하고(任性逍遙)
세상의 관계를 살펴 실천하라(隨緣放曠)
다만 잘못된 생각만 거두면 될 것을(但盡凡情)
무슨 성스러운 진리(법)를 따로 구하랴(別無聖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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