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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깨달음과 역사

5월- 색즉시공 공즉시색

by 책이랑 2020. 10. 27.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현실계의 온갖 사물이 공한 양상(변화와 관계)으로 존재하며,
공이란 현실계의 존재양상 바로 색 그대로가 공이라는 뜻이다.

명사화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이라는 그것이 우선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 불교의 존재관, 또는 인식관
- ‘연기(緣起)의 가르침’은 우주적인 보편논리로서 모든 존재를 변화와 관계성으로 보는 관점
- 자연과학에 있어 인식의 기초가 되어야 함은 물론 구체적인 역사 현실에 입각한 사회 이론이나 역사 이론으로까지 심화 발전되어야 한다.(물질적인 것, 심리적인 것, 언어, 법, 도덕 등의 가치 체계)

 

‘물질계가 공하다’ (色則是空)는 말은 표시점이 찍혀있는 긴 문장을 대치하여 하나의 약속언어인 ‘공’ 이라는 용어로 압축한 것

▶ ‘반야 심경’ 의 유명한 귀절인 ‘색즉시공 공즉시색’
: ‘물질계(色)는 공(空) 하다’ 
=  ‘물질계는 변화와 관계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며(色=空)’, 
역으로 표현하여 ‘변화와 관계로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바로 물질계다(空=色)’라는 

: ‘물질계는 순수 독자 영역이 따로 없으며 유기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겹쳐 있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이 변화의 과정 속에 노정되어 있다’ 는 뜻
현상계의 여러 상태를 분석해가고 사상(捨象) 해 가서 그끝에 가서 공을 보게 되고,
공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계의 온갖 사물이 공한 양상(변화와 관계)으로 존재하며,
공이란 현실계의 존재양상 바로 색 그대로가 공이며, 공 그대로 임. 

존재의 모습을 변화와 관계로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때도
여전히 계속되어 야기되는 중요한 오류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 연기의 가르침(空의 가르침)은 ‘변화와 관계의 가르침’
= 어떤 ‘것’ (사물이든, 개념이든 간에) 이 있어 그것이 다른 어떤 ‘것’ 과 관계맺으며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닌,
명사화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이라는 그것이 우선적으로 없다는 것

그 이유는 존재의 변화와 관계성 때문. 현상계에 있어 어떤 ‘것’ 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모든 존재는 실체 (我)가 없다(諸法無我)는 불교적 대표적 인식출발의 명제

 



▶대승에서 풍부하게 만들었던 공(空)의 가르침이,  특히 
한문 불교권에선 더욱 심한 왜곡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

▶ 공(空)에 대한 몇가지 오해

- 첫째, ① 공이란 무(없음)=존재의 부정이지요 ← 엉터리 같은 허무주의

- 둘째는, 공이란 물질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정신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는 관점:‘물질은 정신이고 정신은 물질이다’ 라고 생각

- 또 하나는, ③공이란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체며, 색은 변화하는 본체의 외적인 현상이라 생각하는 것


한문으로 번역  기존의 노장(老莊)사상의 부정적 영향
- 격의불교(格意佛敎, 다른종교나 사상의 용어를 빌어 불교를 해석하는 일) 시대에 번역된 경전에서 ‘공’ 에 대한 번역과 해석상에 오류가 많은 편이며, 특출한 불교사상가인 승조법사의 조론(肇論)에서도 도가(道家)적인 본체(体) 와 작용(用) 의 이분법적 생각이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물을 본체와 현상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는 중국인 특유의 사고유형
= 본체와 현상이라는 따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도 벗어나야 되지만 
그러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한 ‘공’ 이란 말을 ‘색’ 과 다른 세계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표현으로는 늘 어떠한 형태의 실재론(實在論)도 거부하는 입장,
이러한 비실재론(非實在論)적 입장은 물론 무실재론(無實在論) 적 입장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이 비실재론적 입장은 ‘존재계에는 순수 독자 영역이 없으며, 어떠한 존재형태도 자기원인적인 것 (이를테면 신 따위)은 없으며 모든 것은 타원인과 결부되어 생성 변화한다’ 는 것이지 존재가 숫제 없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존재의 모습을 존재하기는 하되 변화의 과정 속에 서로서로 겹쳐있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존재를 변화와 관계성으로 파악하기는 하되 기본 관점이 여전히 실재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문젠데, 그것은 다음의 몇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다원론적인 실재론에 근거하는 경우. 이 세계에는 A,B,C,D…등의 무수한 사람과 생각이 있고, a,b,c,d……등의 사물과 기타 등등의 것들이 있어 서로 영향관계 속에 변화해 간다는 생각을 들 수 있읍니다. 일종의 요소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는 이원론적 실재론에 근거하는 경우. 이 경우는 첫번째 경우의 축약된 형태라고 볼 수 있읍니다. 이 세계를 크게 인식과 대상으로 구분하여, 삶과 역사를 이 두 영역의 상호 교감과 그 발전으로 보는 생각이지요. 이러한 인식과 대상의 문제는, 상호규정 및 형성의 관계 법칙으로 볼 때 선후의 관계나 각각의 순수 독자 영역으로서의 부분을 전혀 인정할 수 없음은 불교의 기본입장이지만 일반 학문에서도 변증논리나 현상학 등에 의해 진작에 극복된 생각입니다.

 

세째는, 일원론적인 실재론에 근거하는 경우. 브라마니즘 유일신적인 기독사상, 또는 물(物)을 말하는 마르크시즘 등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어쩌면 마르크시즘은 세 가지의 경우에 두루 해당할는 지도 모릅니다.)

 

:‘실재론적인 사고방식’ 에도 이렇듯이 다양하고 심층적인 갈래가 있음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는 기본적 불교의 명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간단한 것이 아니면서도 매우 중요한 일
이러한 근본적인 시각을 통해서만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을 떨치고 마침내 열반에 이를 수 있으며 보살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내는 방편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

색즉시공하니, 큰 지혜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공즉시색하니 큰 자바로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
觀色卽空, 成大智而不住生死
觀空卽色, 成大悲而不住涅槃-華嚴還原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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