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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기록

034. 떠나간 자와 머무른자

by 책이랑 2020. 8. 5.

 

여성문학읽기 5기(2) 2020.6.11
나폴리 4부작(3)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한길사

 

 <나폴리 4부작> 중 3권. 제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는 중년기에 접어든 두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폴리를 떠나는 레누와 나폴리에 머무르는 릴라의 삶은 급변하는 사회상과 더불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마치 용수철처럼 서로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한다.

목차


    두 주인공의 결혼과 출산 육아, 그리고 복잡한 사회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1]  <나폴리 4부작>제 3권인 이 책에 대한 1. 별점 2.소감

    [1]-1 별점
    4.9 / 3/ 4.5 / 4.5  

    [1]-2

    ▶ 요즘 한 생각인데
    어떤 인물의 생각은 개인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 그가 살아온 시대에서 어떤 순간이 정점이 된 후, 그 지점에 멈추고, 맺혀 있는 것 같다. 4.19를 경험했으면 거기에 멈추고, 최근에는 광화문 촛불 등으로. 작가들이 그렇게 습득된 세계관에 안에서 작품을 쓴다.  (그렇게 하면 작품에 등장하지 못하는 계층의 인물들이 생긴다.)
    - 하지만 페란테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세계를 그려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군들중 어느 하나도  빼버릴 사람이 없다. 모든 인간 군상을 담아내려고 한다.

    -  레누가 낸 책에 대해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가 혹평을 하지만 질리올라는 좋았다고 평가한다.  머리 파악하며 사상적인 것만을 주입해 온 사람들이 사상의 기류를 바꾸려는 사람들에 그렇게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
    "최근 10년간 노동,사회, 문화 분야가 버릇없고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젊은 세대에 의해 망가져 버렸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지(p62)"

    ▣ 여자친구들 

    * 질리올라- "여자들이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잘 표현했다."
    * 카르멘- "용감해"
    * 아다- "집에 둘만한 책이 아니다."
    * 릴라

    남자들

    * 프랑코- "지금은 소설이나  쓸때가 아니다. p.99"
    * 미켈레- "미성년자는 읽을 수 없는 책"

    ▣ 어머니
    * "더러운 내용"

     

    - 20대에  탐독했던 책들은 백인, 남자, 지식인들이 쓴 책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만의 작은 세계관인건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읽었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관을 너무 크게 펼쳐놓은 거다.

    - 그런데 페란테는 (어떤 한 세계관으로  독자를 깨우치려 하기보다는, 생각의 틀을 펼치는 방향으로 제시한다.

     

    LA 타임즈와의 인터뷰  중

    https://www.latimes.com/books/la-ca-jc-elena-ferrante-interview-20180517-htmlstory.html

     

    In a rare interview, Elena Ferrante describes the writing process behind the Neapolitan novels

    Seven years ago, it took just one book for an as-yet-unknown Italian novelist to become one of the most prominent personalities of the early 21st century. What made the phenomenon even more unheard of was that it involved an author who had written an epic

    www.latimes.com

    Q: 당신의 작품에 많은 활동과 인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 인물을 최소한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미니멀리스트와 달리-   당신은 알렉산드로 뒤마의 전통에 속하는- 통속적인 내러티브의 전통에 속해있는다고 하는 평가에 동의 하는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인기있었던 작품에 있는 강력한 장치를 다시 쓰겠다고  결정할 수 있고 그렇게 한다. 나는 대중 문학의 강력한 장치들 중 일부를 재사용하기로 결정할 수 있지만, 나는 해당 작품이 그 임무를 수행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 말은, 유감스럽지만 난 결코 뒤마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대중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전통을 이용하고, 비틀어 쓰고, 그 전통의 규칙을 어기고,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과 반노벨의 위대한 역사적 창고를 뒤지는 것은, 내 생각에, 직업에 의해 화자, 나레이터로 있는 모든 사람이 가지는 의무이다. 디데롯은 "The Nun"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Jacques the Palinist"도 썼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학적 경험을 가르는 경계를 지우면서도 이 역사적 순간에 형상을 부여하기 위해 두가지의 전통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많은 행동들,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것과 미니멀리즘을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쓸모없는 틀에서 벗어나보자.

     

     그렇다. 예를 들어  발자크가<고리오 영감>은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에 쓴 건데 당시의 인간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을유문화사

     

    한편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돈´ 문제이다. 발자크가 보기에 당시 프랑스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바로 돈이었다. 고리오 영감의 비극도 따지고 보면 혈육의 정마저 돈으로 좌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젊고 야심만만한 으젠 라스티냐크에게도 돈은 역시 고민거리이다. 돈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작가는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드러난 혼탁한 사회상과 ´돈´의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 페란테는  사상에 끼워맞추는 방식이 아닌 열린구조를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잘 펼쳐냈다.

    ▶ 내 별점은 3 이다. 

    < 그림자노동>이 2.5이었으니 그에 비해 이작품은 잘 읽혀서 +0.5해서=3.0이다.

    -  두 친구의 감정선에 공감하면서도 무서웠다. 친구가 잘되면 기뻐한다 등 , 사회적으로 알맞는 반응이라고 간주되는 감정이 있는데 이와 다르게 친구를 질투한다거나, 친구는 불행한데도 자기를 자랑하는 것 등의 행동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 오랜 시간을 같이 한 단짝친구가 4명 있는데, 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폴리 4부작>의 저자 엘레나 페란테 인터뷰

    북클럽 오리진 [미니북] 나는 얼굴 없는 작가가 아닙니다. 국내 완역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미시적인 정직성입니다. 인간과 삶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1boon.kakao.com/bookclub/minibook20180203

     

    원래 저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모순적이면서 조밀하게 짜인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인간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총체적인 면모를 파악해야 합니다. 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으며 절대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복합성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모든 화자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취약점입니다.

     

    불안감, 모성, 여성성에 대해

    ● 젊은 세대로서의 느낌을 얘기해주신 것 같다.  두 주인공의 결혼생활, 육아를 하면서 불안감, 모성, 여성성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 이전과 달리 3권은 전환되는 느낌이다. 여기서는 '떠나는 것'은  회피라고 느껴지게 되었고 '머무른 자'가 삶을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

     3권에는 모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토론을 오기전에 '모성'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돌봄은 왜 여성의 책임으로만 주어지는지?  엄마는 가난한 엄마, 부자 엄마등 상황이 다양한데 왜 중산의 엄마가 완벽한 표준으로 제시되는지? 그게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3권에서는 모성에 대한 반항적 탐색이 많은 것 같다.

    모성성에 대한 왜곡에 관한 Jacqueline Rose’s 의 통찰

    Mothers: An Essay on Love and Cruelty is an urgent feminist appeal for cultural chang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초의 사진을 보면 한 무리의 남성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낙태를 주장하거나 옹호하는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의 몸에 대한 남성적인 식민지화는 자궁 안에서 시작됩니다."라고 그녀의 설득력 있는 새 책에서 재클린 로즈가 쓰고 있다.
     … 
    완벽하게 밝혀진 중산층, 주로 백인 어머니들로 완벽한 직업, 완벽한 남편,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며"그들의 자아 만족감은 그 이미지를 따르지 않는 모든 여성들을 완전한 실패자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페런트는 오늘날,   작가는  여성이 모성애를 목가적인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두운 내면으로 진실되게 파고드는 것"이 과제라고 말한다 www.irishtimes.com/culture/books/jacqueline-rose-s-fascinating-insights-into-the-distortions-of-motherhood-1.3484321

     

    모성과 창작에 대한 페란테의 생각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동시에 최선을 다합니다.
    We Tell a Story and Try to Do Our Best

    Answers to questions from Merve Emre www.europaeditions.com/news/2558/elena-ferrante-interviewed-by-merve-emre


    Q
    : 최근, 아이가 엄마의 시간과 에너지뿐 아니라 언어와 생각을 앗아가는 것처럼,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애로서 그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당신의 작품은 모성애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창작하는 생산과 물리적 생산(출산,육아)와의  창작과 생식의 상호 작용을 어떻게 표현할 생각입니까? 자신의 언어에 공을 들이는 시간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 보낸 시간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EF:나는 당신이 그 질문을 공식화한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엄마라는 칭하는 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엄마의 고민은 다른 여자에게 돈을 주고 도음을 청할 수 있는  부유한 엄마의 고민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현실적이고 강력한 창조적 충동이 있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이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흡수하고 때로는 우리를 소비할지라도, 나의 언어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을 없애지는 못 합니다: 사람은 두가지 모두를 위한 시간을 찾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습니다. 저는 제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린 어머니였던 시절과 부유한 어머니였던 시절에도 그런 시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생식의 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비록 어려움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둘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출산"은 여성에게만 속하는 우리의 특수성이며, 그 누구도 감히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일을 표현할 때 '탄생의 은유'를 사용한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출산은 은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을 때나 책, 아이디어, 세상의 이미지를 낳을 때나. 우리는 두가지를 다  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페란테 인터뷰 불평등에 관하여

     

    이제, 승리와 패배라는 개념을 지울 때입니다.

    페란테 

    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18/jun/16/elena-ferrante-eliminate-concepts-failing-winning-losing
     

    Elena Ferrante: ‘It is time to eliminate the concepts of winning, losing and failing’

    It took me a long time to understand that these classifications are as cruel as they are abitrary

    www.theguardian.com

    나는 승자와 패자를 구분 하는 것이 제멋대로이고 잔인한 일이라는 걸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성차별, 인종 차별, 그 결과 초래되는 극도의 지능의 낭비가 이세상에 없는 것인 것처럼 가장한다. 마치 우연한 기회에  많은 특권- 출생한 지역과 , 가족, 기회의 불평등이 얻어진 적이 없는 것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목록을 작성한다. 

     
     

     

    [2] 인상깊은 부분은?

     <나폴리는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밀라노나 러시아 연방이면 몰라도 나폴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릴라의 통제할 수 없는 머리가 지어낸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자신에게 순정을 바치고 있는 가여운 엔초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모든 것을 이룰수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고싶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p.22


    나폴리(왼쪽)  서울(오른쪽)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흥행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봉준호 감독은 이제 세계인이 "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국가"에 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말과 일치하는 대목인 것 같다.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상전벽해. 레누가 첫사랑 안토니오를 몰래 만나던 장소.
    저수지에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59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곳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미 제국주의와 스탈린식 관료주의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노동당들의 개혁 정책은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종속적인 유보 상태로 머무르게 할 뿐이다. 이러한 유보적 태도는 혁명의 불길에 찬물을 쏟아붓는 격이다. 그러므로 만약 세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사회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두면 결과적으로 수세기 후에는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될 것이고 노동계급은 강제적 소비주의의 먹이가 될 것이다.'

    " 때를 만나면" 이라는 페이지  레누의 생각

    ' 종교선생님과 벌인 언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좀 봐. 모든 선택에는 기원이 있는 법이야. 살며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한쪽 구석에 쌓여만 있는 듯 싶다가도 때가 오면  의미를 가지게 되는 법이야'

     - 불교적인 세계관인 것 같다. 서양에서는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분류하지만 불교적인 세계관은 "때를 만나면 "이라는 해결책이 된다.
    - 3권에서 동
    네친구들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우연히 일어난 일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한 레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지했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사건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느라 열정 없는 인생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결혼과 안정적인 삶이 너무 빨리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곳에서 이미 몰락해버린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p.85

     

     레누에게 공감이 갔는데  착각을 하고 살게 된다.  이분법적 사고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도 하게 된다.

    ▶ 만난지 오래 되었지만 가끔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공통점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외부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있는 사람이었다. 릴라같은 사람이었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아져야 한다는 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친구들과 <탈코르셋> 토론을 하다보면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져야 한다는 내용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을 실현시키는 부분이 있긴 한데, 똑같아 지는 것이 여성을 실현하는 방법은 아니기도 하다. 

     

    헤겔에게 침을 뱉는 것은 남성 중심 문화에 침을 뱉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에게 침을 뱉는 행위다. 유물론적 역사관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과 남근 선망 사상에 침을 뱉는 것이며 ··· 나치즘과 스탈리니즘과 테러리즘에 침을 뱉는 것이다. 전쟁과 계급 간 투쟁과 무산계급 독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침을 뱉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이름의 함정과 모든 가부장적 문화의 징후와 제도적 형태에 침을 뱉는 것이다. 여성의 지성이 허비되는 것을 막고 사회에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특성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노예 변증법 따위는 집어치우자. 머릿속에서 열등감을 깡그리 없애야 한다. 여성의 자아를 되찾아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안티테제가 아니다.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억압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는 현명하지 않은 일이다. 남성의 영역이 우주까지 확장되는 데 비해 지구상에서 여성의 삶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여성은 지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여성은 예측할 수 없는 주체다. 동시대,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부터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p. 393 ~ 394

     

     

    신은 인간, 즉 'Ish'를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는데 이때 남성형과 여성형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만들어냈냐고? 신은 먼지 흙으로 'Ish'의 형태를 만든 다음 콧구멍으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런 다음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 상태가 아니라 이미 형상을 갖추고 생명을 얻은 남성을 재료로 Isha'h, 즉 여성을 만든다. 신은 남성의 옆구리에서 여성을 취한 다음 즉시 살로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Ish는 여성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모든 창조물과는 달리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내 살의 살이며 내 뼈의 뼈다. 신께서 나로부터 만드신 것이다.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다음 그녀를 내 몸에서 뽑아내신 것이다. 나는 Ish이고 그녀는 Isha'h이다. 여자를 부르는 명칭에서부터 그녀가 신성한 영혼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나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여자는 내 어근에 붙은 접미사일 뿐이며 오직 내 언어 속에서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p.521~522

     

    뭔가가 되고 싶었다는 레누의 고백

    페란테의 작품에는 여러가지 갈래의 페미니즘 생각이 섞여 있다고 한다.
    ▶작품에서 레누가 뭐가 "되고" 싶었는데, 뭔지 모르겠다. 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쳐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 p.495

     

     

    ● 여러분들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으신지?

    ▶ 나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자유롭고 이상한 할머니.
    할머니의 모습도 정형화 되어 있는데 사실 할머니 안에서도 다양한 삶이 있다.

    ▶"할머니"의 구매력이 늘어났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 이미지일수도 있다.



     되고 싶다고 다 될수 있는게 아니고, 환경 탓도 있고 내탓도 있는 거다. 안팎의 조건이 맞아 하는 거다. 그느니 뭘 못했다고 다 내탓이 아니고, 잘됐다고  해도 대 내가 잘해서도 아닌 거다.

    ▶ 시인
    이상의 어린시절 일화가 생각난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가라고 하자 이상은
    "나는 김해경(이상의 본명)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역시 비범하다.
    그런데 
    뭐가 되려고 해야 하는 건가?

     

    [3]  질리올라를 만나는 것으로 3권이 시작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질리올라는 레누에게 니 책 잘 봤어(p.113)이라고 말했었다.  질리올라는 어떤 유형의 여성을 대표하고,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두주인공과 질리올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 질리올라가 자기는 너희 둘 처럼 머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게임의 규칙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비참한 삶을 살았다. 마을여자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 여성들이 생존전략으로 남성의 부와, 지위를 이용하지만 그런 남성의 규칙에 들어가게 되면 밀리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 질리올라는 레누와 릴라보다 체재를 몸으로 일찍 파악했다. 질리올라가 빠져나올 수 없었을까 싶지만 남자들과 대등하게 생활할수 있는 힘, 경제력이 없다. 
    -  릴라는/재능이 있어 그 힘을 스스로 획득했고 레누는 /교육을 통해 체재에서 빠져나왔다. 

    레누와 릴라는 상황에 이끌려 가지 않고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릴라가 햄공장에서 계속 일하다가 소진되고 망가졌을 걸 같기도 하다.

    엔초와 릴라

     엔초는 자기 인생이 없어보인다. 

    ▶ 여자들은 엔초같은 인물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없다.

    ▶1권에서 엔쵸가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리나의 돌에 맞고 돌아간 후 리나에게 마가목열매로 만든 화관을 준다. 이게 뭘 상징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북유럽신화, 그리스 신화 등에 관련 신화가  많았다. 마가목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해준다는 뜻인 것 같다.

     

    1. 북유럽에 마가목의 신화가 있다. 이 나무의 “함께 있으면 안심”이라는 꽃말도 이 신화에서 유래한다. 강하고 늠름한 벼락의 신은 언제나 농부들의 편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벼락을 내던져 어떤 것이라도 단번에 쓸어버렸다. 그런 벼락의 신이 큰 홍수에 떠 밀려가게 되었는데 이때 죽을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던 나무가 바로 마가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벼락의 신은 마가목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신화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배를 만들 때 반드시 마가목 나무판 하나를 사용한다고 한다. 마가목은 불에 강하다는 뜻으로 7번 불을 지펴도 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가목이 상징하는 것

    ▣ 새싹이 힘차게 솟아나는 강정제, 마가목[馬牙木] 2019.11.17 
    https://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121560

     

    ▣ 로완트리에 관한 전설
    http://www.angelfire.com/ks/larrycarter/Rowan/Tree.html

    2. 다프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드라이어드(나무 요정)로, 페네이오스의 딸이다.

    아폴론이 에로스의 활솜씨를 놀리자 (에로스는 아폴론의 노래를 싫어했다고도 한다)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화살을 쏘아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게 했다. 아폴론은 에로스가 쏜 사랑의 화살을 맞고 강의 신 페네오스의 딸인 다프네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하여 다프네에게 구혼했지만 다프네는 에로스가 쏜 증오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아폴론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달아났다. 아폴론은 다프네를 쫓아다녔고, 아무리 달래봐도 소용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아폴론은 숲을 헤치며 다프네를 끝까지 뒤쫓아가 막 안으려할 때, 다프네가 더이상 도망칠 길이 없자 아버지 페네이오스에게 자기를 구해 달라고 소리쳤다. 페네이오스는 다프네의 몸을 월계수로 변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하여 아폴론으로부터 구해지게 되었다. 


    ▶ 하지만 나는 엔초가 흥부전의 '제비'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존재하기 힘든 인물) 흥부전에 제비의 욕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에서 엔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을 원한다. 

    - 사실 마을 공동체가 릴라를 살리는 듯한데 남성인 인물은 거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볼 때 릴라같은 계급의 인물이  파괴당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
    아등바등 하다가 죽는게 현실적이다.

    ▶나는 좋았다. - 여자가 토대를 닦아줘야 하는 고정관념을 깼고 릴라가 엔초위에서 군림하는 모습이다.
    릴라는  햄공장에 갔을 때 자각을 하고 전환을 한다.  그리고 생활속에서 머무른다 
     이에 비해 
    레누는 자기를 부정당하는 시스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엔초가 없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 하지만 작가는 한쪽의 성의 힘만으로는 안된다는 뜻으로 릴라-엔초 릴라를 설정한 것 같다. 

     

    릴라는 엔초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나는 릴라가 엔초에게 본 것이 그녀가 지난날 스테파노나 니노에게서 본 것과 별반 다를 것이없다고 생각한다. 릴라는 엔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다. 스테파노의 경우에는 일단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실체 없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다. 니노의 경우에는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릴라에게 아픔만 남기고 시꺼먼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엔초만큼은 릴라에게 예기치 못한 아픔을줄 것 같지는 않았다. 139

    레누의 서술과 릴라의 행동

    ▶ 릴라의 진실은 레누의 해석이 아닌 레누의  행동에 대한 서술에 있다.
    ▶ 레누는 관념의 폭을 넓혀갔기에 머리로만 알았던 것이다.
    어쩌면 근사함의 차이만 있지 몸과 머리로 각각 얻어낸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가서 고행을 해서 얻은 도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얻은 깨침과 뭐가 다른가
    - 리나가 "니가 성인군자냐? 다 사라져버릴 인간이야." 라고 하는 것은 이미 릴라는 그것을 넘어섰고 레누가 자신이 관념적이라는 것 못알아차리는 것을 짚는 것 같다.

    인물을 설명해석+묘사에_ 릴라에 대해 릴라의 진실

    ▶이 책에서 여성주인공의 일관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금강경의 어법은 
    겉으로 나타나는 상을 부정하는 말로 사물에 대한 관념적 고집을 형성하지 못하다록 하는 어법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일 뿐, 어느 것도 뭐라 규정지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작가도 릴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기 보다, 제시된 상황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여성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삶을 일관적으로 살아온 주인공들을 제시된 주인공이라기 보다 금색공책과 비슷하다주인공이 일관되게 흘러가지 않고 다각도로 제시된다. 그런 결은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이작품은 이야기의 풍부함을 놓치지 않기에 이를 간파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레누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것에 주의 해야 한다.
    - 3권에서는 레누의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 가기 시작한다.


    ▶질리올라가 녹색 옷을 입고 있는 것, 1권에서 등장했던 부자동네에서 녹색옷을 입은 소녀, 아르만도의 아들의 장남감 자동차가 녹색이었다. 레고 장난감의 돈도 항상 녹식이다. 그렇게 보니 녹색은 "부"를 의미 하는 것 같았다. 
    - 두 주인공의 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달라진다. 어렸을 때는 글을 써서 부를 얻고 싶어했고, 나중에는 스테파노의 아내가 되었지만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했고 나증에는 리노만이 의미있다고 했지만 그 둘의 사랑은 깨어졌다.

    "녹색은 또한 전통적으로 돈, 재정, 은행, 야망, 탐욕, 질투, 그리고 월 스트리트와 연관되어 있다."

    나는 돈이란 것이 고액 연봉과 거액의 수수료로 변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뒷거래를 거치는지 생각했다. 밀수품을 나르거나 공원에 있는 나무의 가지를 자르거나 공사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고향의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부터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안토니오, 파스콸레, 안초가 생각났다.

    엔지니어, 건축가, 변호사, 은행가 같은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돈도 비록 여러 단계를 거쳐 여과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솔라라 집안사람들의 돈과 다를 바 없이 불법적인 거래나 파괴 행위를 통해 얻은 것이다.

    ···더러운 돈과 깨끗한 돈의 경계는 어디일까. 엘레오노라가 피렌체의 무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뿌린 돈은 과연 얼마나 깨끗할까. 내가 선물로 받아 집으로 가져가는 이 물건들을 사기 위해 사용된 수표가 미켈레가 릴라의 입금을 지급하기 위햇 사용하는 수표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507)

     

     

     

    [4] 니노와의 만남 릴라는 헌신을 모른다는 니노의 말에 대해

     

    ▶나중에 릴라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성 관계에서도 니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준 것 같은데 나는 왜 니노가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 니노가 나중에 부자집 여자랑 결혼한 걸 보면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기를 원한 것 같다. 릴라는 레누의 친구이지만 레누같은 여성(헌신적)이 아닌 걸 알아차렸다.

    릴라는  성적인 부분을 원하는 것을 다 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남성을 만족시켰을 때라도 상대방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 여성의 욕구가 중심에 섰을 때 불만족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릴라이다.니노는 전적으로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사람인데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가 없어서 그럴 것 같다.

     


    니노가 나쁜 놈인줄 알면서도 레누가 니노에게 빠진 이유는 도대체 뭘까?

    성관계를 하면 만족을 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물론 레누는 엄청 느끼는 편이긴 하지만 남성과의 성적결합자체가 릴라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크게 즐겁지 않을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니노를 알아왔지만 내게 그는 꿈같은 존재였다. 그를 내 곁에 영원히 붙잡아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유년 시절에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상이었기에 나에게 그는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그와의 미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피에트로는 달랐다. 그는 현재의 인물이었다. 새로운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커다란 바위였다. 그곳은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이자 아이로타 집안에서 내려오는 규율의 지배를 받는 영토였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위대한 이상과 명문가에 대한 중배와 원리원칙이 중요시되는 세계였다.

    피에트로의 인물형-디오니소스

     피에트로가 전공했다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엄청난 향락이 벌어졌다는데 피에트로가 성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아이러니이다.

    ▶ 레누는 첫날밤을 기대했지만 허무하게 끝났다. 피에트로는 관념의 아이콘이다.

     디오니소스는 20세기에 각광을 받았다. 

    그전에는 타락과 쾌락을 추구하는 인물을 의미했다면 그 이후에는근대에서 일탈하는 니체갈 말하는 욕구에 충실한 인간형을 상징하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욕망을 추구하는 것파괴하는 존재를 의미하며 서양의 카니발이 그런 기간이다.

    ▶ 욕망과 쾌락을 피에트로는 글로 쓰고 레누는 몸으로 체현했다는 것도 웃기다.


    여성들에게는 "첫사랑의 순정"에 대한  세계관이 있다는 걸 레누가 보여준다.
    - 하지만 내생각에는 니노가  첫사랑이 아니어도 레누에게 필요했던 게 있다.  니노가 아니었어도남편한테 너무 실망해서 그마음이 없어진 듯하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자기의 자아를 찾아야 했을 때에 레누는 이런 선택을 했다.

     


    ▶아들에게 연애를 잘하려면 드라마를 시청하라고 말을 한다.
    -여자들이 연애에 기대는 심리가 드라마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에.

     

     

     



    [5] 피에트로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레누의 결혼생활에 대해.

    ▶ 결혼이란 어쩌면 성관계를 공식화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  자신이 왜 피에트로와 결혼했는지를 정확히 말한다.
    -  나는 
    여자들이 제도로서의 결혼을 할 때 
    1)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2) 경제적인 신분상승을 원해서 대부분  동기에 의해 선택했다는 것, 애정이 아닌 비즈니스적인 잣대로 했다는 걸 인정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 취업 초기의 소득이 높아야 생애소득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그만두는 것 합리적 행동인 것 처럼 여자의 예상 소득이 높지 않으니 결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생애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현실에서 신분상승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나아지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는 것 사랑에 목슴건 선택을 하는 것은 사실 드믈다는 거다.

     젊은세대의 결혼관이 알고 싶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결혼은 나를 어디에 묶어 놓는 느낌이라서 을 부담스럽고연애만, 동거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기성세대가 결혼을 필수라고 느낀다면 젊은 세대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연애나 동거가 결혼의 대안인가? 싶다. 그건 관계의 양상이 크게 다를까?
    결혼의 문법과 다르지 않을 것같다. 

    동거에 대한 시각이 변할 것 같다.
    - 자신이 동성애, 양성애자라고 하는 친구가 많은데  여성이랑 연애를 하고 있지만 동성결혼은 합법화가 안되어 있다.

    김규진씨가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갔지만 몇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규정에 없어서 못하고 왔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들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부여된의 본질인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신분상승의 부담감, 의무감을 피하고 싶은 것 아닌가 한다.

    -그냥 피하기 보다 가족으로 부터의 탈출한다, 결혼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 등 결혼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지? 

     

    ▶ 비즈니스적인 속성을 해체하는 과정에 있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여전히 공고하다.
    그렇지 않은 남녀 관계라는 것이 있을가. 남자가 결혼후 자기 것이라는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여자를  대할 수 있을까?

    ▶ 잡아 놓은 물고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시각이 없어져야 한다. 결혼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면 돈 많은 남자랑 결혼을 해야 한다. 아니면 애까지 고생이다. 
    육아의 과정에서 부담을 줄여주는 과정이 없이는 안된다. 

    -독일의 경우 아기가 있는데 너무 좁은 공간에 살면 국가가 결정해 놓은 최소한 면적으로 주거공간을 준다. -인간의 복지에 대한 기준이 없이 출산율을 절대 높이지 못한다.


    ▶ 우리나라는 임대주택추첨에서 아이가 많아도  아이가 적은집랑 똑 같다. 그런데 
    큰애세명보다 작은애 세이 필요한 공간이 더 크다.


    ▶ 그렇다면 서류정리를 하고,  같이 살면 어떨까?  서로 의무가 없으니 퇴근해서 와도 반갑지 않을까? 

    ▶ 내 생각에는 주거지가 다른 상태에서 방문해야지 같이 살면서는 그게 안될 것 같다.
    ▶ 연애의 동거의 차이는  동거는  양가 부모가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지 못하고, 도덕적 비난을 하지 못한다 점 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남편이 "돈을 벌어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시혜로 인식되고 있다. 의무로 묶여 있어 고맙지 우월적지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너무 피곤하다고 하고 뭐라 하면 "너도 벌어" 라고 하는데 돈을 버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골은 유목의 전통이 있고 사회주의적 제도가 있어서 돈많은 한국남자가 몽골여자와 결혼한후, 제멋대로 행동하면 몽골 부인에게 버림받는다고 한다. 재산이 여자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젊은 남자를 사귄다고 한다.

     이런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결국 경제적인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 68때  가사노동 유급화가 나왔다가 누가, 국가가 기업이 지불할 건가?에서 막혀 있었다.
    -  이론가들은 이미 점검이 끝난 옛날 얘기라고 하지만 돌봄을  사회화하고 무임금 가사노동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 성평등 정책을 논의 할때 노동과 돌봄의 이야기를 같은 테이블에서 해야만 한다. 여성의 시간 사용을 재정비 해야 한다5일제는 남성형 가부장제 사회에서 제시하는  노동형태이므로 이제는 노동과 돌봄 얘기를 같이 해야 한다
    지금의 속도로는 법과 예산을 바꾸는데 50년, 100정도 걸린다고 한다.

     

    ▶ 결혼을 해체하려면 경제적관계의 불평등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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