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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기록

032. 각성

by 책이랑 2020. 8. 5.
 

각성 
케이트 쇼팽 지음, 한애경 옮김/열린책들

 

 

목차


     1899년 처음 발표되었으나 60년 동안 거의 묻혀 있다가 1960년대 재발견 되고 제2페미니즘 물결이 일던 때인 1970년대 선풍적으로 읽혔다.  지금은 여성학과 문학수업의 필수도서로 읽히는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 고전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고독한 영혼 A Solitary Soul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어했다고 한다.

    ※ 1899년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직접적인 금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감정적, 정신적, 육체적 포기, 자녀들에 대한 무관심, 로빈과의 성적 관계, 로버트와의 감정적 부정 등,  당시 사회에서 확립된 성역할을 따르지 않고 여성이 사회의 기대에 의해 질식게 되는 여성의 실존을 폭로했기에 심하게 검열을 받았다. 

     작가인 케이트 쇼팽은 1850년 출생으로  20세인 1970년 결혼했다. 
    -  당시 나이로는 뒤늦은 데뷔했는데 , 데뷔  10년 동안 100편을 썼다.

    <각성>의 주제  

    정체성, 여성과 여성성, 결혼, 사랑, 사회계급, 억압, 예술과 문화, 가족, 사회적 평판, 의식과 존재

    출처: https://www.shmoop.com/study-guides/literature/the-awakening/themes

     

     

    [1] 별점과 소감

    ▶ 3.8/ 4.0/3.5

    ▶ 4.0이다. 스토리만 보면 별점이 높지 않겠지만, 읽은 후 상징을 중심으로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과정에서 점수가 올라갔다.  새 / 옷의 종류 /  집 etc 등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읽으면서 내 자신이 바닷가에 가는 것 처럼 느꼈다. 감각적 언어도 매우 풍부하다.

    ▶ 나는 피아노 치는 여성의 캐릭터 설정에 공감이 갔고

    남성인물이 좀 부족하게 그려져 있는 것, 거기다가 전형성을 가진 것 등도 마음에 들었다.


    ▶ 3시간 만에 읽어서 그런지 몰입이 잘 안됐다.
    - 주인공이 기대보다 미성숙하다고 느꼈다. 주인공이 고뇌, 각성을 거치면서 어머니, 주부로서의 원숙해진 행동이 나오지 않아서, 고뇌가 사춘기 소녀의 방황에 그친 느낌이다.  

    - 또한 나 자신이  작품이 대상으로 했을 독자층인  middle class의 여성이 아니라서 그런지
    공감이 안갔다
    . "19호실로 가다" 를 토론할 때  동네 엄마들이 하는 말에서 느껴지던 것, 
     < 로마법 수업> 을 읽으면서 '로마인' 시각으로 쓰여진 내용에 대해 '노예' 입장인 나로서는 공감이 안되던 것과 비슷하다.

    여성이 고독의 순간을 잘 포착했고 내용상 각성 awkening은 은 좀 과한 제목인 것 같다.

     

    ▶ 작가의 계급/입장,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내용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이 시공을 초월하는 문학작품이 나오기  힘든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스토리가 단순한데,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는 이런 내용이 나오게 만든 당시 사회의 조건을 중심에 두고 읽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성이 강조되는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면 억눌림을 받았던 감정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촛점을 맞추고 감정을 강조하는 때의 작품이라면  탄압받는 이성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에 촛점을 맞추어 해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도덕이 강조되던 미국의1900년대에 도덕이 아닌 감성을 따르라는 말을 하고 있다. 19세기 미국 남부 백인 사회와  크리올 사회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P. 170~171 「여자가 사랑하는 이유를 알면서 사랑에 빠진다고 생각하세요? 사랑할 사람을 고르던가요? 마음속으로 <저 사람한테 가! 저 사람은 대통령이 될 만한 유능한 정치인이니 저 사람이랑 사랑에 빠져야 해>라고 생각하는 줄 아세요? 아니면 <명성이 자자한 이 음악가한테 내 마음을 줄 거야>라거나 <세계 금융 시장을 주무르는 이 금융가가 좋겠어>라거나?」
    「일부러 제 말을 왜곡하는군요, ma reine(여왕 마마). 로베르를 사랑하세요?」
    「물론이죠.」 에드나가 말했다. 처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자, 에드나의 얼굴이 화끈거리며 군데군데 붉어졌다.
    「왜죠?」 그녀의 친구가 물었다.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왜 그를 사랑하죠?」 에드나가 무릎으로 기어 라이즈 양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즈 양은 에드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왜냐고요? 그 사람 머리카락은 갈색이고, 관자놀이 옆으로 자랐으니까요. 그 사람이 눈을 떴다 감았다 깜빡이고, 코는 약간 삐뚤어져 있으니까요. 입술이 두 개고 사각 턱이며, 어릴 때 야구를 너무 열심히 해서 새끼손가락을 똑바로 펴지도 못하니까요. 왜냐하면…….」  
     

     -  에드나의 물질적 수준은 지금의 토론하고 있는 우리보다 높은 편인데 에드나가 이런 삶을 꾸릴 수 있는 것은 당시 미국 경제의 기반이 되는 노예노동 덕분이다. (남편인 퐁텔리에씨가 하는 일에 대한 서술에서 산업의 변화가 감지되기는 한다. )
    - 노예제와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빅토리아 시대 그림, "현대의 여성 편견은 그때부터 ... - 노컷뉴스


    2016. 10. 9. 
    https://www.nocutnews.co.kr/news/4666040

    “나이가 찼는데도 청혼 받지 못하면 ‘문제 있는’ 여자, 결혼은 안 하고 오랜 연애 상태에 있으면 ‘알 수 없는’ 여자. 그 밖에도 남편을 먼저 죽게 만든 ‘기 센’ 과부, 호색기가 있는 ‘밝힘증’ 여자, 남자 대신 생활비를 버는 ‘가엾은’ 여자, 직업적 야망이 커서 ‘가정에 위협적인’ 여자, 책을 과하게 읽어 따지기 좋아하는 ‘피곤한’ 여자, 피임을 하며 몸의 자유를 즐기는 ‘이기적인’ 여자, 자전거를 타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남자 같은’ 여자 등, 입담에 오르내리던 여자들의 종류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여자에게 들러붙어 있는 고질적인 편견들에 대해 논하려면, 빅토리아 시대의 여자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필수”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 10점
    이주은 지음/이봄

    사실 우리가 ‘아름다운 명화’라고 부르는 이 작품들에는 ‘아름답다’라는 수식어 하나로 넘길 수 없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가 다수 숨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회적 함의와 비밀 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의 역사, 특히 여자에 대한 편견의 역사적 맥락을 ‘그림’이라는 단서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런 사회적 분석은 물론이고,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여자 이미지를 그리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을 교차시킨 미술사적 분석 또한, 놓치지 않고 이 책에 담았다. 가정이라는 영역에 갇힌 여자들처럼 세상 안에 갇혀 자유를 꿈꾸던 예술의 위상에 대해서도 논한다.

    ● <제국주의와 남성성> 각잡힌 ‘남성’억압된 ‘여성’의 기원

    경향신문 2005.01.1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501141740231

    "19세기 말이 되면 화려하고 귀족적이었던 섭정시대의 멋쟁이와 빅토리아 중기의 강인한 신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퇴폐적인 양상이 나타난다. 문필가 오스카 와일드가 대표하는 세기말적 유미주의는 동성애 성향과 화려한 의상을 표방하며 엄격한 남성성의 전통을 거부하고 엄밀한 성역할의 구분에 반기를 든다.

    불과 한 세기 동안 벌어진 남성성의 극적인 변화를 놓고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주장은 남성성이란 본질이 아니라 일종의 역할극(수행, performance)이라는 것이다. 남성성의 형성과 변모는 여성과 제국주의라는 관점에서 또다시 설명될 수 있다."

    제국주의와 남성성 - 10점
    박형지.설혜심 지음/아카넷

    대우학술총서 573권.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정의되고 작용했는지 고찰한 연구서다. 영국사와 영문학이라는 다른 두 분야의 전공자가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이론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와 젠더라는 주체를 조망하고 있다.

     

     

    저자들은 대영제국의 융성기에 젠더가 제국주의의 주요 도구로 사용됨과 동시에 중대한 산물로 자리 잡게 되는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19세기 영국의 남성성이 독단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설정된 여성성과의 대타성을 통해 형성되었고,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던 불안정한 것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랜드 아일의 의미

     미국남부는 종교적인 압력도 크다. 
    -
    청교도들은 초기 기독교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금욕주의자들이며  종교탄압을 피해 황량한 미국에 온 그들은 종교덕분에 자신들이 살아남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p.78 미사를 보는 동안 에드나는 압박감과 현기증 짓눌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제단 위 불빛이 눈앞에 흔들렸다. 다른 때 같으면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썼겠지만, 지금은 답답한 성당에서 속히 벗어나 탁 트인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랜드 아일은 그러한  종교적, 정신적 억압이 덜한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P. 123~124 이유는 모르겠지만, 매우 행복한 시절이었다. 완벽한 어느 남쪽 바닷가에서 보낸 날의 호사스러운 따뜻함과 햇볕, 색깔과 향기가 자신의 존재와 온통 하나가 된 듯하자, 에드나는 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을 즐겁게 찾아다녔다. 꿈꾸기 좋은 양지바르고 나른한 구석을 여러 군데 찾아냈다. 그리고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인생이란 기이한 아수라장 같고, 피할 길 없는 종말을 향해 맹목적으로 꿈틀꿈틀 기어가는 벌레와도 같았다. 그런 날이면 에드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고, 맥박이 뛰고 피를 뜨겁게 하는 공상을 할 수도 없었다.
     
     
     
    -  이곳에서  바닷물 수영은 원초적 충동이 일깨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But the beginning of things, of a world especially, is necessarily vague, chaotic, and exceedingly disturbing. How few of us ever emerge from such beginning! How many souls perish in its tumult! The voice of the sea is seductive; never ceasing, whispering, clamoring, murmuring, inviting the soul to wander for a spell in abysses of solitude; to lose itself in mazes of inward contemplation. The voice of the sea speaks to the soul. The touch of the sea is sensuous, enfolding the body in its soft, close embrace.” p.34

     

    사회의 변화와 여성의 삶의 변화


    - 에드나의 삶은 현대의 여성들과는 또 다른  그렇게  삶을 다르게 만든 것,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수 있다.
    - 노동필요/가능 여부, 공립학교 의무화, 경쟁, 아내와 엄마로서 여성의 역할의 내용 변화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지음/뿌리와이파리

     

    P. 322~323 20세기 미국의 가정은 19세기의 가정처럼 행복을 추구하지만 더 이상 도덕적 행복이 아닌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주부들의 입장에서, 청소기니 세탁기니 냉장고가 되었다. 이러한 가전제품의 구매야말로 자신이 꿈꾸는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옆집에서 소유한 최신형 전기레인지가 없으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결국 가사기술은 미국의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의 해방을 선물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사노동에 예속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가전제품이 제공하는 편리함, 편안함, 청결함 등으로 그들을 중독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 없이는 가사노동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더 많이, 더 자주 사용하면서, 더 쉽다는 이유로. 그리하여 일견 생산기술로 보이는 가전제품들은 소비재가 되는 것이고 가정에서의 소비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 소설, 드라마는 제한된 삶을 다룸으로써 여성의 삶을 다시 왜곡한다.

    - 중학생 딸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길래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부부의 갈등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는데 그 드라마만 보면 은연중에 부부의 갈등이 성적인 일탈에서(만)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드라마의 의미는 영국과 우리나라가 다를 것이다. 영국은 이미 여성이 다양한 선택으로 다양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인데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삶은 그만큼의 다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성>은 별 사건이 없다. 당시 미국의 사회, 세계관이 그만큼 단순하고 뒤떨어진? 탓일 거다. 동시대의 프랑스소설에서 로베르 같은 젊은 남자는 애인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 각성이후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고  각성을 통해 성장, 성숙하지 않고 각성에서 끝난다.
    <마담보바리>도 주인공이 정신을 못차리고 죽는건 같지만 그래도 그전까지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 (그림을 그리는 것은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활동을 뜻하는 것이므로)
    에드나가 
    그림 그리는 것이 좀더 나왔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각성 이후의 행동이 모두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만 서술되었다. )

    ▶p. 234페이지에 보면 의사가 하는 말이 나오는데 생물학적 결정론에 입각한 말들이 나온다.  남편에게 하는 말과 에드나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이중적 태도가 보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망상에 사로잡힌다. "
    "자연의 섭리인가 봅니다.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죠"
    “환상에 쉽게 넘어가는 점이죠” etc


    [3]인물 분석

     

     


    인물 관계표

    여성인물: 에드나를 중심으로 여성인물들의 성격이 비교되게 설정되어 있다.

    (1) 에드나

     

    자신을 이상적인 아내, 엄마라는 틀안에서만 인식하다가 자신이 독자적인 삶과 열정을 가진 존재임을 의식하게 된다.

     
    “Even as a child, she had lived her own small life within herself. At a very early period, she had apprehended instinctively the dual life - that outward existence which conforms, the inward life which questions.”
     
    “Edna began to feel like one who awakens gradually out of a dream, a delicious, grotesque, impossible dream, to feel again the realities pressing into her soul.” 
     
    pp. 31~32 그녀의 내면에서 희미하던 어떤 빛이 분명해졌다. 그 빛은 하나의 길을 보여 주었지만, 이는 금지된 길이었다.
    처음에는 그 빛이 그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빛 때문에 에드나는 꿈을 꾸거나 생각에 잠겼고, 어두운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그 고뇌 때문에 한밤중에 펑펑 울다가 겨우 추스르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퐁텔리에 부인은 우주 속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신이 자기 내면과 주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물여덟 살 여자의 영혼이 깨닫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지혜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성령이 여성에게 보통 내려 주는 어떤 미덕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시작, 특히 하나의 세계의 시작은 필연적으로 모호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운데 몇 명이나 이러한 시작을 이겨 내고 일어서는가! 얼마나 많은 영혼이 그 격렬한 혼돈 속에 스러지는가!  
     
    p.173 내가 어떤 성격의 여자인지 알아보려고 해요. 솔직히 내가 어떤 여자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모든 사회적 규범에 비춰 보면, 난 아주 사악하다고 할 만한 여자예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그런 여자라고 스스로 납득할 수가 없어요.


    (2) 라이즈양 


    독신, 피아니스트 – 다소 가난하고 주변에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독립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다. 
    에드나에게 "예술가는 -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P. 174 「글쎄, 가령 오늘 헤어질 때, 내 날개가 얼마나 튼튼한지 보겠다고 팔로 나를 안고는 어깻죽지를 만져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전통과 편견이라는 평원 위로 날아오르려는 새는 강한 날개를 가져야 해요. 약한 새들이 상처 입고 지쳐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지상으로 낙하하는 모습은 서글픈 광경이에요.>」
    “The bird that would soar above the level plain of tradition and prejudice must have strong wings. It is a sad spectacle to see the weaklings bruised, exhausted, fluttering back to earth.” 
     
     

    (3) 라테뇰 아델


    - 헌신적인 아내, 헌신적인 
    엄마라는 당시의 이상적 여성상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4) 마리키타


    - 스페인 소녀, 몸을 잘 이용하는 본능에 충실하고 감각적 여성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음, 작가의 시각이 반영된 듯


    ▶ 사실 에드나는
    마르키타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드나는 자신의 주체성과 자아를 발견하고 라이즈양처럼 예술을 통해 독립을 하려고 했지만 좌절한다.로베르가 떠났기 때문?

    - 에드나는 섬이라는 장소, 크리올 문화라는 환경을 접하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의 실상을 보게 된다. 남자를 만난 것이 각성의 계기가 되긴 하지만 그 안에도 균열이 있음을 감지한다.

    p. 241밤새  뜬 눈으로 지새울 때 엄습했던 절망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에드나는 이 세상에서 바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로베르 빼고는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로베르나 로베르에 대한 생각도 언젠가 자신의 존재밖으로 사라져 결국 홀로 남겨질 날이 올 거란 사실도 깨달았다. 

     출처: https://i.pinimg.com/564x/8d/88/fa/8d88fa0380615756b5996e20b14b3451.jpg

    소유물로서의 아내


    작가는 남편이 부인을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서술한다.
    (이것만 충실히 해내면 자유를 허용한다는 점에서는 몽펠리에씨는 현대의 어떤 남성보다는 낫고, 에드나도 현대의  여성보도 나은 조건이기도 하다)

    "알아 볼 수도 없이 새까맣게 탔구려." 마치 값나가는 개인 소장품에 난 흠집을 살피듯이, 퐁텔리에씨가 아내를 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pp.9-10)

    - 에드나를 엄마라는 기능, 역할로만 인식

    "그는 아내가 평소 아이들에게 무심하고 관심도 없다고 그녀를 야단쳤다. 엄마가 자녀를 돌보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돌본단 말인가? ..그는 지겹도록 끈질기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p16)

    ▶ 로베르는 결국 에드나를 떠나는데 에드나의 남편인 퐁텔리에 씨처럼 에드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여자로서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동일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 에드나는 그런 의견을 거부한다.)

    - 남자인물들은 나이, 성격에 따라 행동이 조금 다를 뿐 여자에 대한 생각은 동일 하다.

    P. 226 「정말, 정말이지 바보 같은 남자군요. 퐁텔리에 씨가 나를 자유롭게 놔주는 그런 불가능한 일을 꿈꾸며 세월을 낭비하다니! 난 이제 퐁텔리에 씨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에요. 내 선택에 나 자신을 맡길 거예요. <로베르, 여기 있네. 이 여잘 데려가서 행복하게 살게나. 이제 그 여자는 자네 것일세!>라고 한다면, 당신네 둘 다 비웃을 거예요.」 
     
    「여자가 사랑하는 이유를 알면서 사랑에 빠진다고 생각하세요? 사랑할 사람을 고르던가요? 마음 속으로 <저 사람한테 가! 저 사람은 대통령이 될 만한 유능한 정치인이니 저 사람이랑 사랑에 빠져야 해>라고 생각하는 줄 아세요? 아니면 <명성이 자자한 이 음악가한테 내 마음을 줄 거야>라거나 <세계 금융 시장을 주무르는 이 금융가가 좋겠어>라거나?」
     
    분홍 코끼리는 슬퍼요 - 10점
    아델라 튀랭 지음, 넬라 보스니아 그림, 황수진 옮김/프레스21

    정원에 고립 된 마가리타는 무리에서 카라멜 핑크 피부를 만들 수없는 유일한 코끼리입니다. 부모가  마가리타에게 그 측면을 부과하기지 않을 때  마가리타는 자유의 의미를 발견하고 동반자와의 평등을 향한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4] 애드나와 모성애

    P. 102~103 「본질적이지 않은 거라면 나도 포기할 수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돈도 포기할 수 있고, 목숨도 바칠 수 있어요. 하지만 나 자신을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더 또렷하게 설명하긴 어렵군요. 이건 최근에 차츰 이해하고 깨닫기 시작한 거예요.」

     

    "I would give up the unessential; I would give up my money, I would give up my life for my children; but I wouldn't give myself. I can't make it more clear; it's only something I am beginning to comprehend, which is revealing itself to me."

     

    • 에드나가 "하지만 난 내 자신을 주지 않을 거야 but I wouldn't give myself"라는 한 말은 무슨 뜻일까?

    • 'to give of yourself 와 'to give yourself'라는 구절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다른 것일까?

     


    [5]  에드나의 독립

    뭔가 잘못된 게 없는지 여러 가지 사항을 일일히 살펴보며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게 퐁텔리에씨의 취미였다. 그는 자신의 물건들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는데, 이는 자기 소유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림이나 작은 조각품, 귀한 레이스 커튼 등 뭐든 구입해 집안 가보들 사이에 두고 감상하면서 무척 즐거워 했다.(p.108)

     

    ▶이 장면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비슷하다. 이반 일리치가 부인과 함께 새집을 단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그는 새집으로 이사한 직후 죽을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 에드나는 남편 소유의 집을 떠나 자기 능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크기의 집으로 이사를 간 후 비둘기 집이라고 이름 붙인다.

    P. 209 에드나는 <비둘기 집>이 좋았다. 편한 가정집 분위기도 있었지만, 에드나가 스스로 그 집에 매력을 더해 집 안이 따뜻한 햇살처럼 환했다. 사회적 지위는 낮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만큼 높아진 기분이었다. 일상의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기 존재가 더 강해지고 딛고 선 범위도 넓어졌다. 이제는 오로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삶의 저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대로 살 뿐, <세상의 평판을 의식하며> 사는 데 만족할 수 없었다.  

    과연 애인, 성적인 계기가 있어야만 결혼을 정리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기 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계기가 되어 결혼생활에서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관계가 종교, 윤리 때문에 억눌려 있던 욕망이 터져나오는 걸 촉발하는 것일 것이다. 

    ▶ 에드나는 수영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몸을 쓰는 활동이 전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주변에 댄스를 같이 하면서 '회춘'한  부부가 있다. 

     

    [6] 작가의 서술 태도에 대해

    ▶ 에드나의 혹은 작가인 케이트 쇼팽의 태도는 대한민국 워킹푸어의 이야기를 썼다는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서 느낀 것과 비슷하다. 치열하지 않다고 느꼈다. 작가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으로서 몰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을 하고 묘사할 뿐이다.

    당사자들은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나 시간이 부족하기에,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그것을 기술하다보면, 관념적이 되는 한계가 생기는 것 같다.

    ▶ 그런 측면에서 나는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작품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강주룡이 속한 계급의 언어로 서술되었다. (엄청 여러번, 고쳐썼을 것...)

    30년대 고공농성 이끈 여성 영웅, 주룡을 불러낸 이 작가
    - 한겨레문학상 ‘주룡’ 작가 박서련
    일제강점기 평양 고공농성 강주룡의 삶 다뤄 
    있었지만 잊혀버린 ‘일하는 여성 영웅’ 복원
    새터민 의심할 정도로 사투리 능란 ‘읽는 맛’

    http://www.hani.co.kr/arti/PRINT/845198.html

    “기러면 내 어드렇게 하랴? 꿈에 그리던 독립군인데. 내 난리 피워 부대에서 쫓겨나면 임자 속이 후련했갔니? 게서 분개하여 기딴 소리 하는 이에게 총이라두 쏘아야 했갔어?”

     

    당선자는 정작 “사투리 구사를 위해 그다지 연구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그곳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이력이 이북 사투리 구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는 “철원에서는 오히려 경기 말을 쓴다”며 (황해도 장연 출신 일제 강점기 작가)강경애의 산문을 읽고 필사하며 사투리를 익혔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백석 시집을 자주 읽었다. 신앙이 흔들릴 때 성경을 읽는 느낌으로”고 설명했다.

     

    체공녀 강주룡 - 10점
    박서련 지음/한겨레출판

     

    [7] 결말의 의미

     바다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수영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지

    레옹스과 두 아들이 생각이 났다. 그들은 그녀 삶의 일부였다. 그들은 에드니를, 메드나의 몸과 영혼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와 에드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을 떠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로베르는 몰랐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망들레 박사를 만났다면, 그 박사는 자신을 이해에 즈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녀 뒤로 해변은 점짐 멀어지고, 그녀는 더 이상 수영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에드나는 먼 곳을 응시했다. 한순간 이전에 느꼈던 공포가 몰려왔지만, 이목고, 나서 사라졌다. 아버지와 마거릿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플라타너스에 몫인 늙은 개가 컴컴 짖는 소리도 들렸다. 기병대장고가 현관을 나설 때 올리던, 구두 뒤축의 박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윙윙대는 별들의소리, 패랭이꽃의 사향 같은 향기가 본 친지에 가득했다. (p. 247-2.43)

    목숨을 끊으면서 그녀는 사회에서 각게 규정한 자신의 존재, 역할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한 것 아닐까? 규정에서 자유로운 존재라고 선언하는 것.

    "But whatever came, she had resolved never again to belong to another than herself."

    ▶나도 열린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결혼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소유가 되기 이전의 상태이다. 
    -  그러나 한편 각성이 
    욕망, 충동에 그치고 의식화가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되겠다.  의식화가 없다면 여자를 소유물로 보는 남편, 로베르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것이다.

    ▶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릴라가 자기 존재를 완전히 삭제해 버리는 것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자기 존재를 없애서 자신이 어떠한 맥락의 레퍼런스가 되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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