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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기록

036. 붕대감기

by 책이랑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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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차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인물

     

    워킹맘 은정의 말

    P. 20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라도, 자기가 누군지조차 잊은 채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말을 하고 싶었다.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은정은 종종 생각했다.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미용사 지현의 말

    P. 37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진경이가 딸 율아에게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진경이 친구 세연에게
    P. 65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너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너는 놀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 없다는 걸 네가 이애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도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50대 솔로 윤슬의 생각
    P. 95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흐름의 중심을 향해 헤엄쳐 갈 나이는 지났다. 뒤로 물러나 물결에 실려 간다. 퇴적된 지층의 일부가 되어.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으니 목소리를 높여 지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윤슬에게도 치열하던 시간이 있었고, 이제는 힘주어 살기보다는 영화처럼 삶을 볼 시간이었다. 

     

    40대 여성주의자 세연의 말


    P. 163~164 나는 그저 퍽퍽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됐고, 건강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 아름답거나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내가 쓰는 문장들이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실용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됐어. 그런 내가 좋지만,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 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겠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 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이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 너무, 웃기잖아요. 이런 것 때문에 제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어요.

     - 너무 웃긴 일들 때문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죽기도 하고 그래. 말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말이라도 하면 좀 나아.

     

    세연이 (여성학) 교수 경혜에게
    P. 151 여성주의라는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해서, 자신도 그 안에 있다고,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라고,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채이가 친구 형은에게
    P. 108~109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야. 누구도 일주일에 7일, 24시간 내내 타인의 고통만 생각할 수 없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너도 그럴 수 없는 걸 왜 남한테 요구해?  

     

    채이와 형은
    P. 144 몇 번의 격렬한 논쟁 끝에 채이는 형은과 다시 일상을 같이 하게 되었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자주 싸웠고, 싸우다가 화해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형은은 채이의 무심함과 종종 비합리로 흘러가버리는 낙관주의를, 아무나 함부로 믿어버리는 순진함을 종종 지적했다. 채이는 형은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불신하는 버릇, 갑작스럽게 분로를 폭발시키며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에둘러 타일렀다. 경혜와 서로 조심스러워 건드릴 수 없던 부분까지도 형은과는 숨김없이 건드리고 비판하고 설득하고 다투다가 풀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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