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지음, 노승영 옮김/사월의 책
우리의 노동은 왜 이토록 고되고 지루하며 우리의 꿈과 늘 대립하는가? 이반 일리치는 현대의 일상화된 노동은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상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를 끊임없이 성장시키기 위한 기획된 노동이라고 말한다. 산업 사회의 형성과 함께 우리 모두가 임금 노동에 종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그림자 노동에 삶 자체를 지배당하게 되었음을 밝혀낸다.
가사노동뿐 아니라 직장 통근, 자기 계발, 스펙 쌓기, 어쩔 수 없는 소비로 인한 스트레스 등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강요되는 모든 무급 활동이 자율적인 삶을 억압하는 그림자 노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역사를 통해 성장 일변도로 치달아온 현대를 고발하고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회복하려는 선언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 성장은 과연 옳은가”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성장의 희생물로 만들었는가” 에 대해 추상적 이론보다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현대 사회의 뿌리를 캐낸다.
목차
오늘 여성문학 토론 5기를 시작 하게 되었다.
오늘은 새로이 참가하시는 분이 있어 더욱 반갑다.
작품소개
▶ 이 책과 <세탁기의 배신> 중에 이 책이 좀 더 '원전'에 가까워 선택했다.
- 전형적인 독일학자의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역사철학적 방법론으로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사제가 되기전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모던을 해체한다는 점은 포스트 모던과 입장이 동일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다르다.
* 프리드리히 헤겔의 역사철학 – 이전의 시대들을 철학적으로 고찰해서 당시의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면서 그런 정신들이 어떻게 현재를 구성했는지를 하나의 사건으로 기술한다.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지음/뿌리와이파리 |
P. 322~323 20세기 ... 결국 가사기술은 미국의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의 해방을 선물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사노동에 예속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가전제품이 제공하는 편리함, 편안함, 청결함 등으로 그들을 중독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 없이는 가사노동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더 많이, 더 자주 사용하면서, 더 쉽다는 이유로. 그리하여 일견 생산기술로 보이는 가전제품들은 소비재가 되는 것이고 가정에서의 소비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1] 별점과 소감
현대의 일상화된 노동들은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기획된 노동이며, 우리 모두가 임금노동에 종속되었고, 그림자 노동에 우리의 삶 자체를 지배당하게 되었음을 밝히는 이 책에 대한 별점과 소감은?
▶ 별점- 3.9/ 4.5 / 2.5/ 4 / 5
▶ 내 별점은 4.5점이다.
- 다른 책에서 본 것보다 더 깊은 강도의 통찰이 있었다. 나무가 있다면 땅속에 나무의 길이만큼의 깊이로 뿌리가 있다고 하는데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깊이 살펴본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뜨거운 인간애가 느껴졌다.
- 별점이 4.5인 이유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이토록이나 뿌리깊은 지금, 과연 저자가 말하는 "토박이 생활"이 가능한가? 하는 회의감 때문이다.
▶ 제도에 활력을 뺏긴 인간에 대한 논의에서는 영화 메트릭스 (1999)에서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깨어나게 되었는데 (사회를 상징하는) 메트릭스는 인간의 몸에서 빨아들인 생명에너지로 운영되고 있다.
▶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내용을 세세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 나는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났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교육, 언어, 과학, 노동 등이 조작되었고 손아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났다.
- 친구들과 토론모임을 하면서는 최근의 페미니즘 트렌드의 주제(ex. 탈코르셋)로 토론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역사를 훑어 내려오면서 깊이 있게 '일상'을 + '성찰'할 수 있는 발판을 얻을 수 있었다.
▶ 내 별점은 3.9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기에 좋은 책의 경우 4.0을 주는데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은 그 배후에 내용이 많~~았다.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라는 개념을 찾아 봤는데 설명이 한가득~~이었다.
▶ 오랫만에 골수가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다변이 아닌데 핵심이 명확하다. 이전의 사상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수준이 아니고 래디컬radical 하다. radical의 의미는 독일어로는 '근본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근본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이다.
- 모든 것을 평준화 시키는 '로고스' 가 언어를 통해 근대사상에 이르기까지 전해 내려왔다는 것은,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한 내용이다.
- 로마 멸망 후 1000년이 유럽의 '중세'인데, 우리는 그 이시대의 유럽에 대해 잘 모른다. 저자는 12~15세기에 문법서와 언어의 정립한 것이 지배질서, 근대화의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 언어와 상징, 이미지, 영화, 기호 등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인간의 정신을 주조한다.
- 그림자 노동과 자급자족적 노동을 구분 한다. 무른 기술이라고 해도 토박이 활동이 아닌 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궁금한 게 있다. 한 교양철학서에서 서양의 철학을 크게 '이성의 철학'과 '감성의 철학'으로 나누었던데, 감성의 철학은 좀 최근에 발달을 많이 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는게 뻔하고, 불합리 하게 행동할 때가 많다는게 뻔한데, 왜 인간이 '이성'만을 줄기차게 강조해 온 건지??
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엮음/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 조선이 고려시대의 불교의 폐단을 보면서 '숭유억불'을 하게 된 것과 마친가지로 기독교가 도그마가 된 것에 대한 반발작용이다.
-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제국'의 외부를 통제하는 체재가 필요했다. 스페인 '정부'가 필두가 되었는데, 인쇄물을 통해 언어를 통한 표준, 통제의 기재가 발달된다.
- 이런 경향은 19세기부터는 분화되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경우, 이전의 숭고미와 대비되는균형이 잡히지 않은 것도 쾌감을 준다,조화로운 것만이 아닌 끔찍한 사건, 무서운 사건에 흥미를 느낀다는 <추의 미학>이 등장하기도 했다.
- 20세기 초반, 니체는 서양의 합리성 중심의 철학에 도전 했다.
▶내 별점은 5.0이다.
- 내 일상적인 감정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각은 '여자로서의 생각'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되어 온거다. 사람들이 쪼개져 개인으로 낱낱이 흩어져 있기에 무엇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그건 너무 예민한' 사람들이 느끼는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 이 책은 근본적인 것을 짚어 올라가는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 사람을 무능하게 만든다는 거에 대해서는 냄비밥에 대한 생각이 났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은 전기밥솥이 고장나면 어떻게 밥을 해야할지 모른다고 한다. 집안의 노동이 상품화 되면서 능력이 사라지는 거다. 이런 방식으로는 아이들은 청소도 잘 못하게 될 것 갈다.
▶가정주부에게 임금을 줘야 한다~. 가사 노동은 무급의 노동인데, 내가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사노동을 맡기고 이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착취구조를 재생산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경제 구조많은 여성이 보수를 받는 고용시장에 진출하게 된 현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을 들어 사회가 평등해졌다고, 여성도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활동 때문에 포기한 가사노동을 위해 고용되는 것은 또 다른 여성들이다.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주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이민자들이 고국에 보내는 돈은 해외 원조와 외국인 투자를 합친 것보다 국가 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한다. 필리핀은 이 송금액이 GDP의 10%를 차지한다(본문 92쪽). 그러나 한편으로, 원래 청소를 해야 했을 사람-서구 가정의 여성-의 시급보다 가사 도우미의 시급이 현저히 낮지 않으면 가사 도우미를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여성 사이의 불평등이 지속되게 된다.
?
…… 확실한 것은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이 남성보다 돌봄 산업에 더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고, 이는 애덤스미스 이후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목적을 돈 또는 사랑,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이 중요치 않은 행위이고, 물질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이익 추구 욕구에 의한 경제적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2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알라딘 책소개중
- 한국어 강사로서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느낌이 강렬했다. 교실에서 '원어민 강사'가 되는 나는 학생들이 하는 말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 학생이 하고자 한 말의 내용에 상관없이 (문법 등이 틀린 경우에는) 내가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교실에서는 체계적인 문법이 절대 규칙이 된다.
- 나 역시 독일어를 배우면서 남성명사, 여성명사, 이에 맞는 관사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남성중심적 논리를 흡수했었다. 그런데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즉 직업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스스로가 놀라웠다.
[2] 인상깊은 구절
역사학에서 그림자 노동의 발견은 한 세대 전에 민중 문화나 농민을 역사학의 대상으로 새로 발견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리하여 칼 폴라니와 프랑스의 위대한 아날학파는 빈민과이들의 생활 방식, 감수성, 세계관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다. 이들은 약자와 무학자의 자급자족 양식을 처음으로 역사 연구 영역에 포함시켰다. 산업화의 영향 아래 놓인 여성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에서 또 다른 전인미답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일이 될 것이다. 산업사회에 대한 연구가 희소성, 욕구, 성, 노동 등에 대한 은폐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한, 산업 사회 특유의 생활 형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자급자족적 민중문화의 영역과도 다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경제 영역과도 다른 이 그림자 영역이 발견되면, 앙드레 고드가 '새 프롤레타리아 계급' 으로 부른 존재가 역사학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역사가들은 여성을 남성과 대립시킴으로써 최초로 여성의 지위를 박탈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산업 시대의 역사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역사, 즉 차별의 역사가 된다. (pp.203-204)
-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이 곧 프롤레타리아라는 뜻일 것이다. 여성을 수탈하고 여성을 착취하는 방식은 어떤 집단이 사회에서 배재되는 방식과 동일하다.
- 이전에는 유래가 없던 착취가 행해진 것이 근대이다.
Q: 이 책은 1981년에 나왔는데, 위의 내용이 아직 유효한 건지??가 의문이다.
▶ 1981년은 68운동, 저항운동이 일어난지 10년이 지났을 때이고 70년대 일어난 유럽,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10년이 지난 때이다. 저자는 '그림자 노동' 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 페미니즘 운동에 한계가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 가 생각났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
애덤스미스의 경제적 인간과 보이지 않는 여성들
애덤스미스의 경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간의 모델로 구상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경제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계산적이고 두려움이 없다. 그는 이성, 독립성, 이기심 등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모두 지녔다. 따라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남성'에 한정된 모델이 되었다. 반대로, 이와 상반되는 특성인 감정, 의존성, 자기희생, 연대감 등은 여성의 특성으로 모두 몰아넣었고, 여성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다.
오랫동안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이고 늘 존재하는 인프라로 간주되어왔다.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양동이 하나에 물을 채운다. 집에 돌아오면 땔감을 모으고,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으러 길을 나선다. 돌아와 저녁을 짓고 동생들을 재우면 밤 9시가 된다. 그러나 경제학 모델에 따르면, 그녀의 고된 노동은 경제 수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즉, 그녀는 하루 종일 노동하지만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인 존재로 취급된다(본문 93쪽). 캐나다 국가 통계청의 조사 결과, 무보수 노동이 국가 GDP의 30.6%~ 4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30.6%라는 수치는 무보수 노동을 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인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고, 41.4%는 가사노동자가 집안일 대신 다른 노동을 했을 때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엄청난 수치다(본문 95쪽).
그러나 굳이 수치로 환산해 보지 않아도, 이러한 활동이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적절한 양육 및 돌봄 체계 없이 양적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사회의 긍정적 성장의 기반이다. 그리고 이 자원들은 상당 부분 무보수 가사노동의 결과로 양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의 유용성과 가치에 대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가 생각났다. 독일에서 60년대는 독일보수반동의 시기이다.
얼마전 에리히 프롬도 <소유냐 존재냐>들 토론했다 들었는데, 그 책도 1976년에 출간되었다. 중세에서 근대 이전의 시기에 괜찮은 전통이 있었는데 생각 등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어 왔기에 결과적으로 그런 사회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 2000년 독일에서는 맞춤법 개정 이 이었는데 이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 났었다. 너희들이 뭔데..이래라 저래라냐. 왜 통제하려 하느냐..등등. 우리도 대대적인 맞춤법개정이 있었지만 저항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정부가 맞춤법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저항감이 들지 않았던 거다.
- 한편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이 책에 나온 언어정책과 의도가 꽤 달랐다. 백성들이 구어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의 발음을 표준화 했다. 이는 사대부를 견제하는 행동이었다. 의도는 이 책과 달랐는데 결과적으로 효과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갈무리 |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근간이 되는 노동으로 여겨져 온 임금노동밑에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가려져 자본주의 경제의 수면 아래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 자본주의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강간, 강제결혼, 여성 매매, 강제 성매매, 여성에 대한 고문, 소녀 매매,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 등은 가부장적 폭력의 형태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거대한 자본주의적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상징적 폭력과 매체, 인터넷, 컴퓨터게임, 광고, 패션 산업 등에서 여성 몸을 상품화하는 것은 이윤을 위한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왔다.…… 미즈는, 가부장적인 근대 과학이 여성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복속시키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였음을 지적한다.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하에서 미즈가 분석한 마녀, 제3세계/식민지의 여성, 가정주부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가정주부화는 자본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들을 외부화, 혹은 외부영역화한 것으로, 이는 여성 노동이 공기나 물처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외부화되고, 자연화된 여성은 근대 과학과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의해 끊임없이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
[5] 남성이 임금 노동을 담당하고 여성이 가정에 가둬지고 그림자노동의 담당자가 되는 과정
2) 191쪽이다.
①
자급자족을 상대로 한 부르주아 전쟁에서 군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걸핏하면 폭동이나 일으키는 평민 군중을 경제적으로 구분된 남성과 여성의 건전한 노동자 계급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계급의 구성원인 남성은 고용주의 음모에 가담한 공범이기도 했다. 고용주와 노동자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자급자족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자급자족을 상대로한 전쟁에서 자본과 노동은 근본적으로 동맹 관계에 있었지만, 이런 관계는 계급투쟁이라는 제의를 통해 은폐되었다. 이와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남성은 자신의 임금에 대한 가족의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자신이 사회의 정당한 노동을 모두 책임지고 있으며 비생산적인 여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이부분은 요즘 20대 남자들이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산업 노동의 상호보완적 형태인 임금노동과 그림자 노동은 이렇게 하여 가족 안에서 가족을 통해 하나로 섞이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은 자급자족 활동으로부터 사실상 소외된 채 고용주의 이익과 자본의 투자활동에 상대방이 착취되도록 돕는 발판이 되고 말았다. 잉여수익 역시 이른바 '생산수단'에만 투자되던 데서 벗어나, 그림자 노동 자체를 더욱 자본집약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이용되기 시작했다. 주택, 창고, 주방에 대한 투자는 가정에서 자급자족이 사라지고 그림자 노동의 독점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이 그림자 노동은 끊임없이 신비화되어 왔고, 이런 신비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첫번째 신비화는 생물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여성이 맡은 양육과 가사의 역할은 남성에게 있어 '직업'이라는 수렵행위를 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도 필수적인 조건 이라는 것이다.(pp. 190-192)
~~~
② p.196
~오늘날 여성이 불구의 처치가 된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보수를 받기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 자급자족의 측면에서도 무익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기 대문이라는 사실 말이다.
유명한 한 스님에게 어떤 여자분이 일하고, 집안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하느라고 너무 힘이 든다고 한 주부에게 "잠을 줄이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여성의 삶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26페이지, 언어에 대한 얘기가 인상 깊었다.
……. 물론 토박이적 요소나 측면 중 일부는 늘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것은 여느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나는 토박이말이 죽는다고 주장하는것이 아니다. 토박이말은 시들 뿐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의 구어는 두 종류의 언어로 이루어진 합성물이 되었다. 하나는 상품을 닮은, 가르치는 꽥꽥이 말이고, 또 하나는 절름거리고 너덜너덜하고 실룩대지만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토박이말이다. 운송이 이동 행위에 대해 근원적 독점을 구축하고 상품이 토박이가치에 대해 더욱 광범위하게 근원적 독점을 구축했듯이, 가르치는 모어는 말에 대해 근원적 독점을 구축했다.
나는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시를 읽으며 영어를 배웠다. 지금 언어는 '사람들 간의 완전한 교류'를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
-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언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돈을 썼다. 토플, 토익 시험을 치려면 25만원이 필요했다. 세계화시대에 따라가려면, 다른 나라 사람과 대화하려면 영어가 필수라고들 말하는데, 과연 세계화에 '영어'가 필수일지?
▶브라질 민중들에게 글을 가르친 파울루 프레이리에 관한 그림책,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을 읽었다. 문맹이었던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글로 쓸 수 있기까지 40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맥락이 분명하다면 순식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 강무홍 글, 김효은 그림/양철북 |
평생을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교육하고 이끌어 주었던 ‘파울루 프레이리’를 그림책으로 다시 만납니다. 제목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We make the road by walking).”라는 말은 평생을 흑인과 노동자 교육에 바친 미국 교육 운동가 마일스 호튼과의 대답에서 프레이리가 한 말로, 이 말 속에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프레이리의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식한 것이 아니며, 배우지 못한 것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임을 알리며 민중 교육을 위해 앞장섭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세상의 주인임을 일깨워 주며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글씨를 가르쳐 주고,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
합니다.
파울루 프레이리, 삶을 바꿔야 진짜 교육이야 - 양은미 지음/탐 |
40일, 40시간의 기적을 일으킨 ‘파울루 프레이리 학습법’
1963년 4월, 브라질 북부에 위치한 앙지꾸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파울루의 문해 교육 시스템을 적용한 성인 대상의 글 깨우치기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파울루는 ‘가르침과 배움은 학습자가 처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연구자들과 협력해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기초 단어들을 조사해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지 어휘를 사용한 문해 교육을 실시했어요. 그 결과 놀랍게도 40일, 40시간만의 교육으로 380명 중 300명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사실 파울루가 목표했던 것은 문맹자들이 단순히 글자를 기계적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통해 세계를 읽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는 법을 깨우치도록, 자신이 그런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였지요. 이 방법은 ‘파울루 프레이리 학습법’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각자의 현실에 맞게 수정ㆍ보완하여 널리 쓰이고 있답니다..
▶그렇다. 랑시에르도 언어를 배우는데는 스승이 필요없다고 했다.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한다.
▶ 얼마 전 독일어를 모르는 채, 독문과에 입학한 신입생에게 독일어 과외교습을 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스스로 공부지 않으면서, 중간고사, 발표, 쪽지시험 때에, '정답을 알려달라'는 식으로 나를 '이용'했다. 그렇게 하면 전혀 배울 수 없다. 학교, 학원 등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하다록 한 어른들에게 길들여진 결과일 것이다.
- 그런데 어른들 앞에서는 순종하면서 뒤에서는 불합리한 점에 대해 엄청 토로한다. 요즘 예능에서 유행하는 '부캐릭터' 처럼 두 개의 캐릭터가 충돌하는 것 갈은데 정작 당사자는 그 두 상황이 모순된다고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꿨을 때, 인간을 '자원'이라고 칭한 명칭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글을 봤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큰 저항이 없었다.
▶ 세대별로 정치적 효능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40대는 2002년에 월드컵을 하면서 광장을 경험하고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이 있기에 정치참여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나 20대는 진보적인 것 아 보이지만 시민으로서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갸우뚱 한다. 유튜브 댓글달기로 쌓인 걸 풀어내는 걸까?
▶근대사회의 통제, 압력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가 살아 있다면 지금은 개인화 되는 것, 혼밥을 하는 상황에 대해 말할 것이다.
▶ 요즘 처음으로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봤다. 반찬을 사고 내시간을 쓰는게 낫지 않나 싶다. 반찬만든다고 시간을 쏟는 건 의미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가정주부가 가사를 외주화해서 유급노동으로 전환하면 그사람은 돈을 벌고 나는 시간을 벌어 좋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체 결국, 노동자로서 착취당하는 구조로 가게 되는 거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이 현저해서 3시간만 일을 해도 충분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생산력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한 임금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림자 노동이 분화되고 영역이 바뀌는 것 뿐이다. 더 소소한 노동자가 생겨난다.
Q.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
▶ 상호호혜적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
▶새로운 방식의 조직은 협동조합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생협은 다른 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활동가들의 활동을 무급 자원봉사로 이용하면서, 본사에서 지역을 모르는 '전문가'를 파견한다. 수익을 위해. 그리고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소비자의 요구에 재빠르게 발맞춰 상품을 출시한다.
▶ 스페인 몬드라곤 공동체가 공동체의 좋은 본보기라는 말을 들었다. 기업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5조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조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몬드라곤은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나 이냐시오 이리사르.그레그 맥레오드 지음, 송성호 옮김/착한책가게 |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은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1%의 특권층이 부의 4~50%를 차지하는 세계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 조직일 수 있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노동자와 생계형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몬드라곤 그룹은 스페인의 노동자협동조합 기업으로, 품질경영, 효율성, 매출액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소속 회사 261개에 전체 임직원 수가 약 7만5천 명에 이른다. 몬드라곤 그룹은 ① ‘자본에의 참여’ ②‘경영에의 참여’③ ‘연대를 기반으로 한 공동 투자기금’④ ‘혁신과 연구개발’,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기업 정책과 경영 원칙은 어느 것 하나 노동자와 조합원의 참여 없이 결정된 경우가 없다. 7만 명이 넘는 노동자의 의견 참여 없이 기업 운영 조항 하나 고칠 수 없다. 이런 것을 자본주의에서는 비효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대표적인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인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이런 비효율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성장해왔다
▶ 우리도 홍성마을의 경우 학교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다.
▶ 자본주의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이고 시간과 임금의 교환관계이다. 협동조합은 이윤이 독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와는 다르다. 그러나 시민운동 등 어떤 부문에서도 '발전'이라는 것을 목표로 할때 문제가 생긴다.
- 관료화 해도 문제가 생긴다. 노숙자인문학 과정이 시의 소관이 되자 사회복지담당주무관 한사람의 결정에 좌지우지 되는 사례가 생겨났다.
[3] 가정주부가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방법, 임금노동자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를 선택할 수 있을까?vernacular하면서 soft한 기술을 사용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저자가 사회의 속성을 표현한 이 도표는 14세기 이래로 식민지를 통해 축적한 부가 지금의 서구의 바탕이 되었다 걸 간과한 것 같다. 식민지가 없다면 지금의 서구가 없었을 것이고 중국이 아프리카와 자원 관련 계약을 맺으며 식민지화하는 것 등 다른 방식으로 '식민'이 계속되고 있다.
▶ '식민지' 개념은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삶을 잘 사는 것, "인간으로서의 환경에 대한 유기적 대응"을 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라 '질병' 중심이다. 그래서 치료는 불가능하고 돌봄이 필요한 시점에 담당의사에게는 도움을 얻지 못했다. 버려졌다.
[6] 그림자 노동의 신비화에 대하여
그림 노동을 신비화 하는 5가지 방법
① 생물학이라는 가면을 이용하여 그림자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림
②사회적 재생산 이라는 개념과 뒤섞는다.( 마르크스 주의자:)
③ 화폐 시장 바깥 활동에 모두 가격을 매기는 것- 여성의 무보수노동은 자본을 축적하는 행위라고 까지말하게 됨
④ 여성주의자들의 설명 여성의 노동은 '비생산적'이기는 하지만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는 미스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원천" 이라고 해석
⑤ 남녀가 어울려 경제활동을 일했던 것을 무시한 채, 경제발전을 위해 발명된 '성'에 따라 노동이 구분되었다는 전제를 그대로 두고 여성노동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
▶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꾸밈노동, 화장품 회사의 직원이 신제품이 나오면 그것어로 메이크업하느라 걸리는 시간과 노력, 강사가 교재 준비에 보내는 시간 등은 모드 그림자 노동이다. 점점 무급의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의 역습 대가 없이 당신에게 떠넘겨진 보이지 않는 일들 Shadow Work: The Unpaid, Unseen Jobs That Fill Your Day (2015)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이현주 옮김/민음사 |
일찍이 이반 일리치는 임금에 기초한 상품 경제하에서 보수 없이 행하는 비생산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일렀다. 크레이그 램버트는 정보 혁명과 자동화가 진전되고 있는 현재도 그림자 노동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고 단언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의 틈새에서 많은 일이 교묘하게 개인과 소비자에게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의 인질이 되어, 일에 대한 자율성을 누리는 대신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그림자 노동을 수면 위로 꺼냄으로써, 우리가 가진 소중한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돕는다.
▶ 22페이지에 보면 사실 토박이 노동에 속하는 일, 예를 들면 수공예 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중산층 이라고 말한다.
발전이 입히는 피해를 모면하는 것이 새로운 '만족'을 얻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추구하는 특권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 통근할 수 있는 사람은 알고 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고, 가정 분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알고 보면 엘리트 학교를나온 사람이며, 아플 때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알고 보면 이미 희귀하고 특별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다. 또 맑은 공기를마실 수 있는 사람은 알고 보면 부자이거나 행운아이며, 허름한집이나마 직접 지을 수 있는 사람 역시 진짜 가난한 이가 아니다. 오늘의 하층민은 후견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제공하는 역생산성 꾸러미와 도움을 어쩔 수 없이 소비해야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반면, 특권층은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공평한 발전이 생태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자각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설령 공평한 발전이 가능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그 이상의 발전을 바라지도,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끼리 학교가 <마법의 성>이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들었던 내용과 현실의 갭이 크다. 언젠가는 '땅'에 내려와 살았어야 하는데 괜찮다고만 했지 대학가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
▶기사에 보니 젊은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귀농, 귀촌하는 케이스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사화 되는 것은 정착하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언론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Q. 호모 이코노미쿠스: 과연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건 사실일까?
▶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아이들의 공포가 회사의 수익이다. 나중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에너지가 된다. 만화속 몬스터들이 아이들을 무섭게 했던 것 처럼 기업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욕구를 만들어 낸다.
▶ 하인리히 뵐의 작품이 생각났다. 제한된 임금으로 제한된 생활을 하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150만원 받던 임금이 140 만원으로 줄어서 두 개를 먹다 한 개를 먹게 된다.
- 그런데 우리는 계층이 굳어져 있는 사회에서 윗세대가 착취를 하면서도 먹방 등등으로 전국민의 욕망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 세탁기가 고장났다. 나는 작은 걸 좋아하는데, 주변에서 이불빨래를 해야 하니 18kg가 필요하다고들 했다. 일단 너무 비쌌고, 다용도실에 넣으려면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나도 냉장고 사야 했는데 삼성, LG 브랜드의 것들은 너무 비쌌다. 하이마트4도어 냉장고를 60만원에 구입했다.
▶ 한국사회에서는 부모는 자식을 무한히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된다. 자식이 있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가 이유가 된다. 그 선택이 부당한데도 그렇다. 전쟁과 식민지 경험에서 생긴 생존논리이다.
▶결핍이 자녀에게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스스로 선택할 기회, 자기 미래를 자신이 결정하게 된다.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등으로 무엇을 소비할 수 있는가가 자신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기 쉽다.생활비를 덜 쓰고 좋아하는게 아니고 어느덧, 나는 이것밖에 소비하지 못하는 처지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런데 호모 아르티펙스 수브시스텐스가 되려면, 삶의 기술과 지혜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 예전에는 집안에서 부모에게 배우고 집안에서 이루어졌던 일들- 분만, 결혼식의 손집접대 음식 준비 등이 집밖으로 빠져나갔다.
[7] 감상주의에 대해
감상주의는 자급 자족에 대한 향수를 주물럭거림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대립에 내재되어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를 가리는데 성공한다. (p.207)
▶ 생협도 이런 감상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조합원을 본사가 매장에 전문가들을 파견하고 새로운 매장을 만든다.
▶ 비싼 건물에 입점해 있다. 또 서울 사는 사람에게 제주의 아욱을 판매하는 것 환경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결국 친환경적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된다.
[8] 자급 자족 중심의 생활공동체에 토대를 두는 사회가 실현가능하려면 현재 우리가 포기하거나 그만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 토론소감
저자가 불교적인 접근을 좀더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문제로 와야 하는데 지적으로 분석하는데 그친다. 그래서 결국 무기력하게 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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