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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깨달음과 역사

10월- ‘마음’ ‘부처’ ‘중생’

by 책이랑 2020. 11. 1.

 불교가 한문 문화권으로 유입되면서 자연주의적 색채가 너무나 짙은 중국인의 세계관 속에 용해됨
-   "천지는 나와 동일한 바탕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승조법사) 
본체(体)나 현상(用)의 이원적 사고의 틀을 가진 도가 사상의 영향
- 불교가 한역화되는 과정에서 중국적 사고 방법으로 불교를 왜곡되게 받아들인 바가 적지 않다. 
도가 사상의  ‘체와 용’의 구분-
- 외적인 현상작용(用)과, 그 이면에 내재하여 그러한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법칙성으로서의 본체(体)라는 두 부분을 상정


▶ 공(空)이라는 말을 ‘관계와 변화’의 뜻으로 파악하지 않고 도교적 ‘무’로 이해하는 오류가 생김
탄력적이고 역동적인 관계성의 모습이 아닌 현상계의 배후에 근거하는 본질적인 그 어떤 섬오한 영역으로 규정한 것
삼라만상의 이면에는 그 본질적 ‘도’가 있을 것이다, 또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의 추하고 부정적인 모습을제하면 진리의 모습이 구현될 것이다라는 식의 이해가 되어버림

현상의 다양한 차별상에서 그 본질적 ‘도’나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현상 그 자체를 진리의 모습으로 받아들일수 있다는 생각이 생김, 이것은 범신론(凡神論)적인 표현

‘본체와 현상’이라는 이분적 사고형태는
- 유, 불, 선 삼교에 공유하는 점이 많았다.
-  유교에서도 불교와 도교에 영향받은 성리학자들은 이(理)와 기(氣)라는 또 다른 유사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세계를 이해하려 함
개별적인 사상(事象)을 초월하는 강력한 보편적 기초로서의 이(理)를 체득함은 도학자들의 중심과제였음


▶그러나 불교에서는  번뇌집착(실재의식)을 떨칠것을 요구하며 본질의 세계라던지, 성스럽다거나 진리라는 등의 표현은 쓰지 않음, 
- 성스러운 영역, 진리의 세계, 본질의 부분 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그릇된 사고방식

공(空)은 변화와 관계성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존재 일반을 어떻게 이해하며 수용해야 하느냐는 것

공은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한데
-  ※  ‘깨달음’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우리자신의 주관적 영역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난 뒤, 간발의 차이로 다가오는 대상에의 관심으로 몰두하기가 쉽다. 
- ‘깨달음’을 대상존재에 대한 어떤 이해, 즉 ‘~을 인식한다’는 인식론의 차원으로 빠뜨리는 게 되는데 이것은 오류임.

- 존재일반에 있어 ‘인식의 영역’과 ‘존재의 영역’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동시적으로 생성시키면서 그 성격을 규정해 나가는 것
두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 의식의 관행일 따름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슴

▶ 불교에서의 존재일반(法)은 단순히 대상적인 존재가 아니며 선험적인 인식의 체계도 아닌 것
- 주관적인 입장, 즉 ‘나’ 라는 것 까지 모든 존재일반 속에 용해시켜 주관과 객관을 어우러는,
인식과 존재를 동시에 부여잡는 차원의 장(場)을 뜻함
- 이런 역동적인 관계성을 일컬어 공(空)의 세계라 하며,
이러한 세계에 온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여 참여함을 ‘혁명적 깨달음(頓悟)’이라 하는 것

새로이 태어난(본래로 회복된) 존재일반(法)은 이제 달리 ‘마음’ ‘부처’ ‘중생’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세계는 수정주의적인 닦음이나 제거 동등 점진적 노력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존재를 단숨에 싸안아 넘는 혁명적 전환을 통해 깨달아 계합하는 것


꽃을 따고 잎을 떨어뜨려 그 후에 남는 가을의 앙상한 가지나
겨울의 질긴 뿌리만 나무의 본 모습이라 하는 생각은 결코 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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