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작가의 8편의 작품이 실린 작품집 <아직 멀었다는 말>로 토론했습니다. 오늘은 맨처음 작품인 <모르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생생한 등장인물과 촘촘한 묘사'에만도 감탄하며 읽었는데, 토론하면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상징'을 하나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한국 문학의 품격을 높이고 깊이를 더하였다'고 평가하는 이유- 작품의 구조적 /미학적 성취에 대해 알아 보면서 '작품의 맛'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5월 1일(8시~10시)에 한번 더 토론하기로 했습니다.
목차
■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2020, 문학동네 |
[1] 생의 비극성에 대한 이해와 연민, 불공평한 사회를 담은 이 책을 읽은 소감
▶ 첫번째 '모르는 영역' 그리고 마지막 '전갱이의 맛'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요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고, 20년전에 열심히 쳤던 곡들을 다시 치고 있는데, 그때 나는 피아노로 어떤 말을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있다.
- 이 책 바로 전에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었는데 나는 좀 실망했다. 이에 이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감탄하며 읽었다. 저절로 두 작가를 비교하게 되었다.
● 젊은 작가들을 비판을 하면 '꼰대'가 되기가 쉬워서 조심스럽다.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온 젊은 작가의 작품들은 'SF적'이 되기 쉽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의 전형성, 삶의 이데올로기화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낀다.
▶ "우리는 이런 것을 '문학'이라고 불러왔다." 는 생각이 들었다. 치밀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 젊은 여성작가들이 이런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느낀다.
● 서민의 삶을 그리나 처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가 설정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작가가 설정한 거리이다. 현실에 완전 동화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 이는 '작가'로서 사회를 바라보는가, '인간'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는가의 문제이다.
독일의 천재작가인 브레이트와 사회를 보는 눈이 비슷하다.
▶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에는 '허구적 세계에 많은 질감을 제공하는 끊임없는 육체적, 감정적 경험'이 있기 때문에 리얼리즘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SF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장치이니, 결국 중요한 것은 '생생한 인생을 표현했는가?' 일 것이다.
[2] 모르는 영역- 나이 든 남성화자 cf) <안녕 주정뱅이>의 '이모'
-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이 밀도 높게 배치되어 있다.
(1) 낮달: 여성성, 아내를 의미, 의식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존재
달이 UFO라고 했던 엄마의 말: - 딸은 부정, 아버지는 '모르는 영역'이라고 함
세대간 정서적 공유점이 희미하다
담배 연기는 하늘로 올라갔고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승달 모양의 낮달이 크림 빛깔로 떠 있었다. 낮달의 바깥 호는 가늘고 선명한 데 비해 안의 호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톱니무늬로 하늘빛에 묽게 섞여들고 있었다. 운동 후의 식사, 낮술의 취기, 봄날의 나른함이 겹쳐 그는 선잠에 빠지면서도 이게 어쩐지 저 은은한 낮달 때문이지 싶었고, 이게 죄다 저 뜯긴 솜 같은 낮달 때문입니다…… 낮달 때문입니다…… 하다 잠이 들었다.
“어머, 저기 달! 벌써 달이 떴네.”
홍이 손을 뻗어 아직은 훤한 저녁 하늘을 가리켰다. 과연 거기에 그가 낮에 본 초승달이 한결 밝고 또렷한 빛을 내뿜으로 떠 있었다. 시선을 내리니 서서히 땅거미가 지는 마당가에서 호리호리 청년이 허리를 굽혀 개들을 쓰다듬고 있었는데 흰 셔츠를 입은 여윈 등이 초승달을 닮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p.21)
그는 차문을 닫고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다 차창 너머로 초승달을 보았다. 어제보다 살이 더 오른 걸로 보아 바야흐로 차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일별하듯 아침, 오후, 저녁의 낮달을 모두 보았다.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차를 몰아 농가 펜션의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p.42)
● 또렷한 빛을 내뿜고 있는 초승달과
개를 쓰다듬고 있는 호리호리 청년의 흰 셔츠를 입은 등
● 왜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모두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뜨고 뜬 달은 죄다 낮달인 게지, 생각했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라는 부분을 어떻게 읽었는지?
(2) 개: 첫 번째 개/ 두 번째 개
● 첫번째 개가 상징하는 것은?
첫번째 개:
농가 펜션 주차장 한복판에 크고 흰 개가 로드킬당한 것처럼 다리를 쭉 뻗고 옆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죽은 것 같지는 않고 햇볕에 데워진 시멘트 바닥이 따뜻해 땅과의 접촉면을 최대한 넓히고 누워 자는 것 같았다. (p.9/255)
두번째 개: 문제가 생겼을 때의 희생양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혹시 여기 어디서 빨간 신발 한 짝 못 보셨습니까?”
그는 못 봤다고 대답했다.
“이놈의 개가 빨간 신발 한 짝을 물고 가서 어디다 놔뒀는지 찾지를 못하겠네요.”
“개가 신을 물어갔습니까?”
“네, 빨간 신발을 한 짝만. 큰일났네 이거.”
[...] “사장님 게 아니고 손님 걸 물어간 겁니까, 개가?”
“그럼요, 손님 신발을 물어갔으니까 지금 큰일났다는 거지요.”
그의 입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난감하시겠습니다.”
“이거 참 보통 난감한 게 아닙니다. 저놈의 개가 어디다 물어놨는지 말을 안 하니, 아니, 못하니…….”(p.13-15)
● 식당주인: 물어보지 않는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않는/못하는 ....
“그런 김선배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롱이한테 누명을 씌우니까.”
“다롱이가 작은 개냐?”
“네.”
“그게 다롱이……아니, 다롱이 누명을 내가 씌웠냐?”
“알았어요.”
● 다영: 개의 입장에 대해 민감하다. 개는 또 달리 무엇이 될 수 있을까.
(3) 재떨이 뚜껑과 꽃씨 - 앞뒤가 맞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
그는 파라솔 아래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새 구름이 끼어 낮달은 보이지 않았고 허공에 꽃씨만 분분 날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의 뚜껑이 조금 열려 있어 그는 그 틈으로 꽃씨가 들어갈까봐 마음이 초조했다. (p.10/255)
“그런데 자네는 왜 재떨이 뚜껑을 조금 열어놓나?”
“네? 제가요?”
“파라솔에 있는 재떨이 뚜껑을 좀 열어놓는 것 같던데.”
“아, 그게요…… 제가 그러기는 한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냄새 빠지라고 그랬나?”
그는 뭐 야외 재떨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내 재떨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p.30)
(4) 딸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두꺼비와 호리호리)
● 화자의 자기연민, '아들'에 대한 생각
'한번이니까 괜찮다'-외도에 관한 것일까? ....
아버님, 아버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동수가 아들 같기도 하고 사위 같기도 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그런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만약 그랬다면, 아들은 그를 이해했을까. 한 번이니까 괜찮다, 그렇게 이해해줬을까. (p.31)
(5) 딸과의 갈등
(6)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 – 나뭇가지의 심정에 대한 화자의 공감
그는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지는 저수지 물과 그 위에 비친 산그림자가 짙어지다 물감처럼 풀리는 모양을 오래 지켜보았다.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그 찰나의 감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해 그는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7) 해 질 무렵까지 일하는 노파의 굽은 등, 돌봄노동
- 다른 사람들이 먹고, 쉬고 놀러오는 펜션 근처에서 노동하는 노파
텅 빈 들판에 노파 혼자 남아 밭일을 하고 있었다. 노파는 호미를 들고 이랑의 흙을 찍어 작년에 심었던 것의 죽은 뿌리를 파내 흰 플라스틱통에 넣었다. 이랑의 흙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심겼기에 노파가 툭툭 찍으면 영락없이 흙덩이를 매단 뿌리 뭉치가 뽑혀 나왔다. 동그랗게 팬 자리에 새로운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것이다. [...] 일 자체는 간단해 보였지만 선 채 허리를 굽히고 하는 일이라 오래 하다보면 멀쩡한 허리도 노파의 각도로 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노파의 굽은 등은 호리호리 청년의 등과 달리 굴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해 보였다. 저 노파는 저녁도 먹지 않고 이때껏 일을 하는가. (p.26-27)
● 여성들의 삶이 바뀔 수 있을까?
[3] <손톱>(2017)
3) 소희가 판매 실적이 제일 높은 이유
5) 소희의 돈 계산, 하루 일상
7) 손톱 치료비 때문에 터져 나온 소희의 분노
● 소희가 손님들의 말을 되풀이 하기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그런데도 소희의 실적이 제일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핸드폰 AS센터를 떠나지 못하는 소희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 집에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이 있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곳에 괜히 머물렀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였던 것 같다.
[4] <희박한 마음>(2018)
[5] <너머> (2018)- 기간제 교사 N
▶ 평등한 관계,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영향이 잘 그려져 있다.
▶ 실재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정당성을 생각지 않고 제도를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기간제교사는 별말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6] <친구>(2017) - 해옥과 아들
▶ 피해학생 학부모인데 가해학생과 학부모를 옹호한다. 실제로 있었다. 안타깝다.
▶ 해옥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지인도 하나도 없다. 고립상태, '관계빈곤' 상태이다.
[7] <송추의 가을>(2017)
- 합장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몰이해
[8] 토론 소감
▶ 띠지에 있는 글귀가 작품을 적절하게 표현해 준다고 느꼈다.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추천의 글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정을 정확하게 바라볼 용기를 권한다.
" 비정해서 공정한 눈이란 이런 걸까요? 단순한 명암이 아니라 빛을 쪼개서, 어둠을 쪼개서 보여주는 작가를 보며,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이후’를 살피는 장르이지만 ‘너머’를 고민하는 형식이기도 하다는 것 역시요."
- 김애란 작가의 추천의 글
모임운영: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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