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
P. 31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이 있다.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깜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31쪽)
P. 32
여성은 남성이 아닌 모든 것인 동시에, 남성이 남성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다. ... ‘제2의 성’이 있듯 ‘제2의 경제’가 존재한다.
p 60
인간이라면 지성이 육체를 장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은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남성이 ‘정신‘이, 여성은 ‘육체‘가 되었다. 남성이 육체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여성은 점점 더 육체적 현실에 얽매여 갔다.
p 90
그러나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여성들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그 시간 동안 집안일을 돌볼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의 재력이 있는 소수에 불과하다. 청소하는 사람의 집은 누가 청소해 주는가? 보모의 딸은 누가 돌보는가? 이는 결코 수사적인 질문이 아니다.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는 복잡다단한 돌봄 체계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머니가 되면 모든 것이 충돌한다. 서로 분리돼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갑자기 한데 섞인다. 출근할 때 버려두고 온 사적인 자아 곁에 임신한 배까지 두고 나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장에 가정의 흔적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을.(100쪽)
p 179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랑은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났다. 어떤 행동은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어떤 행동은 배려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절대 만나선 안 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똑같은 현상이 대칭처럼 반대편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현재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p 220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자본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을 간단히 해결한다. 즉, 인간의 삶을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투자 행위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빵 한 쪽과 생선 한 마리로 신도들을 먹이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먹고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믿는다. 험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리고 우주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관점은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었다. 실업자 센터를 찾는 여성이나 다카 공항에서 위조 서류를 기다리는 남성 모두 자신의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들이다. 시차가 여덟 시간 나는 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서 발을 뻗고 몇 시간 눈을 붙이려 누운 CEO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자신이라는 자본에 투자를 잘했는지 못했는지의 차이, 그리고 태어날 때 주어진 첫 자본금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성장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어떤 여성 연예인은 가슴 확대 수술이 ‘투자‘였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한겹 한겹 걷어 내고 나면 결국 모든 것이 경제학이다. 우리의 삶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일련의 투자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학에 페미니스트의 관점이 반영될 때에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경제 위기를 넘어설 혜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전망한다
경제학은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 심지어 모든 것을 개인 수준으로 쪼개는 과정에서도 관계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관계는 경쟁, 이윤, 손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를 계산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학은 인간을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인간을 무조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나 역학 관계에 따라 행동하거나 맥락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경제학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이타심을 정반대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p.285)
북유럽 복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 체제는 여성들이 아주 낮은 비용으로 특정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292-293쪽)
˝여성들의 무보수 노동이 경제 모델에 포함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어떻게 빈곤과 성 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가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가, 어머니가 애덤 스미스를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고, 따라서 사회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경제학은 우리가 두려움과 탐욕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 감정들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은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
˝경제학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이타심을 정반대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된다.˝
p 286
우리의 관계는 경쟁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자연을 적대적인 상대로 간주할 필요도 없다.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 전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기계 혹은 정교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경제적 인간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헛되다 느낄 수 있는 상황은 많지만 이 문제 만큼은 헛되다 외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정의 목표는 바뀔 수 있다. 세상을 소유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애쓰는 여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소유는 집착이다. 죽은 물건을 손으로 감싸고 ˝이건 내 거야˝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반면, 세상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은 무엇이 자기 것이라고 선언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신발을 벗는다.
한동안 그곳에 머무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p 298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임무다.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 이상의 훨씬 큰 문제에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을 단상에서 내려오게 해서 작별을 고하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을 혁명이라 부를 필요는 없다. 그저 향상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고 파는 경제를 운용할 기업인이나, 회사원, 상인등이 경제 행위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은 모름지기 이 체제가 공평한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낭비하지는 않는가, 안전을 보장하는가, 세계 자원을 낭비하는가, 고용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학은 인간이 얻는 경험 전체를 포용하는데 필요한 도구와 방법을 갖고 인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즉, 인간이 탐욕과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아하며, 사회적 지향점을 찾아 현대적 경제체제에 반영하다록 연구해야 하고, 인간과 사회발전을 위한 기회를 만들고,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봐야하며,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파악하고, 인간을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에 따라 현존하는 존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적영역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여성의 사적 영역에서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 유럽 여성은 2.36명의 자녀를 갖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1.7명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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