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 - 데이비드 로이 지음, 민정희 옮김/불광출판사 |
P. 89 개인들이 쉬면서 수행할 수 있는 인기 높은 명상센터들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몰리지만,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조직들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사회적 참여불교가 실패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불교의 성공에 따르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볼 수 있다. 교도소 활동, 호스피스 케어, 노숙자 식당 운영 등 몇 가지 형태의 봉사는 현재 불교의 길 일부분으로, 때로는 중요한 부분으로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봉사는 평범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돕는 것임에 주목하자. 나는 지난 세대의 불교인들이 강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렇게 물에 빠진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에 미숙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P. 91 브라질의 대주교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으로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없는지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불교적인 버전이 있을까?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불교인들이 노숙자와 교도소 재소자들을 도우면 그들은 보살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 노숙자가 있는지, 왜 이렇게 많은 유색인종이 교도소에 있는지를 물으면, 다른 불교인들은 그들을 좌익 또는 급진주의자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사회적 행동은 불교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P. 93 지난 몇 년간 매우 성공적이었던 마음챙김mindfulness운동이다. 그러나 또한 불교계 내에서 이 운동은 점점 더 논란이 되어왔다. 마음챙김 수행은 매우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챙김 수행 또한 사회적 고통이라 불리는 집단 고통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저해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은 끝없이 증가하는 생산과 소비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개인적인 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사회변화의 중요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P. 79 전통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 나의 고통은 나 자신의 업과 갈애와 무지에서 기인하므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개인적이다. 우리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볼 때, 문명의 위기라는 생각은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고통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불교로서는 생소하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영적이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바로 그 핵심이고, 여기에는 세계 속에 있는 우리의 처지와 역할이 포함된다. 생태위기는 지구가 우리에게 “깨어나지 않으면 결과는 고통”이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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