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 소설의 미로를 헤치고, 교훈과 전형에 갇힌 해석에서 소설을 해방시키는 능동적 독자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 김진영 지음/메멘토 |
강의를 시작하며: 주관적 소설 읽기
1강 죽음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2강 괴물 / 『변신』, 프란츠 카프카
3강 기억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4강 광기 / 『모래 사나이』, 에른스트 호프만
5강 동성애 /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6강 부조리 / 『이방인』, 알베르 카뮈
7강 고독 / 『왼손잡이 여인』, 페터 한트케
8강 정치 /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발간에 부쳐?변광배
작가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 소설의 미로를 헤치고,
교훈과 전형에 갇힌 해석에서 소설을 해방시키는 능동적 독자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고, 어떻게 기억할지가 중요하다. 작가의 ‘피’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문학의 대표작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김진영 선생에게 소설 읽기는 “숨으려고 하는 글을 끝까지 세상의 제단 위에 올리려고 하는 동시에 그것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내는”(80쪽) 작업이다. 그는 독자에게 읽히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독자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작가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 소설의 미로를 헤치고, 교훈과 전형에 갇힌 작품 설명을 뛰어넘어 전복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소설을 해방시키는 능동적 독서를 한다.
선생의 주관적이고 전복적인 텍스트 읽기 몇 가지를 살펴보자. 『변신』을 비극으로 읽는다는 점은 통상적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 소설을 갑충의 영역에서 다른 데로 빠져나가는 ‘성공적인 탈출’로 읽어 내고, 탈출의 전략을 ‘흡혈’로 해석한다. 죽어가던 갑충은 누이동생의 목에 키스(즉 목을 문다)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름답고 생기로 가득 찬 누이동생의 신체는 누구의 것일까?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아주 높은 지적 작업을 완성한 사람이 열정이나 도취라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우연히 빠지면서 스스로 명예를 실추하는 치욕적 이야기로 읽힌다. 이 몰락의 이야기를 선생은 토마스 만의 건강한 예술미가 완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즉 주인공 아셴바흐가 죽어 가는 과정은, 타치오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타치오에게 들어 있는 썩는 치아를 대신 먹는 과정인 것이다. 이 밖에도 『이방인』의 뫼르소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을 ‘존재를 발견하는 축제’의 장면으로 읽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일치하는 서사로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한편 선생은 자의적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 최근 문학 연구에서 활발한 역사와 철학 담론을 작품 해석에 폭넓게 적용하기도 한다.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사 연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운하임리히(unheimlich: 낯선 친숙함, 으스스함)’ 개념, 베르그송의 무의적(無意的) 기억, 벤야민의 프루스트 분석과 멜랑콜리 개념, 들뢰즈와 과타리의 카프카 분석 외에도 라캉, 아도르노, 마르크스, 푸코, 바르트 등의 철학과 문화 이론을 동원해 심층적인 읽기를 시도한다. 이는 작품 해석의 풍요로움에 직결되며 선생의 문학 강의가 ‘인문학 강의의 정수’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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