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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by 책이랑 2020. 8. 10.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설명하는 소설창작 이론이다. 

소설과 소설가

(The Naive and the Sentimental Novelist (2010)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이난아 옮김/ 민음사

 

 

내용 
ㆍ 실러가 말하는 ‘소박한’ 작가, ‘성찰적인’ 작가 
ㆍ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 
ㆍ 위대한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ㆍ 소설은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일까 
ㆍ 소설은 어떻게 전 세계에서 지배적인 문학 형식이 되었나 
ㆍ 150년 동안 문학 비평가들이 외면해 온 소설의 ‘중심부’란 무엇인가 



1.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프리드리히 실러의 논문 「소박한 문학과 성찰적인 문학(?ber naive und sentimentalische Dichtung)」를 예로 들면서 소박한 작가(독자), 성찰적인 작가(독자)를 설명한다. 소설 창작은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일로, “소박한 면이(천진하고 즐겁고 쉽게 동일화되는) 성찰적인 면과(자신의 목소리를 자각하고 소설 기법에 대해 고민하느라 분주한)” 뒤섞여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는 아홉 가지 일어난다. 


1. 전체 풍경을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어딘가에 있을 모티프와 아이디어, 의도, 중심부를 찾는다
2. 머릿속에서 단어를 그림으로 전환하여 책이 말하는 것
(즉 서술자가 말하고 싶어 하거나 말하는 것, 말했다고 추측되는 것)을 추적해 간다. 
3. 독자는 소설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인지 상상인지를 궁금해하고, 드디어 소설 속 세계의 복잡한 차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로 모순돼 보이는 것들도 독자들은 받아들이게 된다. 
4. 독자는 ‘현실도 이럴까?’, ‘소설에서 설명하고, 보여 주고, 묘사한 것들이 실제 삶 속에서와 같을까?’를 궁금해 한다. 
5. 단어와 비유와 문장에 숨어 있는 음악을 음미한다. 
6. 주인공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주인공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통해 작가를 판단한다. 
7. 얼마나 깊은 이해에 도달했는지를 생각하며 작가와 공범 관계를 형성한다. 
8. 읽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작가가 보여 주는 의미와 독서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소설의 감춰진 중심부를 찾기 시작한다. 
9.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소설의 감춰진 중심부를 찾는다. 소박하게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성찰하면서 의도적으로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고, 궁극적으로 소설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게 된다. 

 

2. 파묵 씨,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 


“서로 모순되는 사고들을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동시에 믿고,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특별한 구조”인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가의 존재를 잊고, 소설이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것을 잊게 된다. 또한 작가를 잊는 순간, 소설 속 세계가 실재라고 믿게 된다. 혹은, 독자는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것이 실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가장 소박한 작가에서 가장 성찰적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설을 쓰거나 읽는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 한구석에서 소설이란 이 아찔하고 모호한 느낌 때문에 읽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작가와 독자가 허구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소설 예술은 살아남을 수 있다. 즉, 소설이란 논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상상을 통해 자유롭게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에 호소하는 예술인 것이다. 

3. 소설의 캐릭터, 플롯, 시간 


캐릭터라는 개념은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여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그 시작은 셰익스피어였다. 셰익스피어는 오랫동안 일차원적으로 고정되어 있던 캐릭터들이 그 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근대 소설에서는 캐릭터들이 플롯과 배경, 주제 등 소설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캐릭터가 배경과 사건에 어떻게 녹아 들어갔느냐가 좀 더 결정적인 문제이다. 플롯은 작가가 풀어놓고자 하는 상황들을 연결하는 선이자, 나뉠 수 없는 크고 작은 단위들을 합친 선이다. 플롯은 서사 구조 또는 사건의 연속 또는 이야기라고도 부를 수 있다. 캐릭터들이 플롯 속에서 움직이는 소설의 시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객관적이지도 않고 일직선도 아니”며, 소설 속에는 인물들의 주관적인 시간만이 존재한다.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는 플롯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소설의 ‘풍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4. 단어, 그림, 사물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언어적이며 ‘단어적’이다. 소설은 시각적 문학이지만, 단어를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전환하여 이해하게 된다. 세상의 풍경 말고도 냄새와 소리, 맛과 감촉까지 단어로 묘사하고, 그 단어를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는 “단어로 그림을 그린다.” 소설가는 플로베르가 글을 쓸 때 모색했던 것처럼 ‘가장 적절한 단어(le mot juste)’를 찾고, 동시에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심상(l’image juste)’도 떠올린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림을 감상할 때와는 달리 그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며, 상상력을 동원해 단어를 이미지화한다. 작가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 내는 소설 속 풍경은 우리 주위에 있는 일상 속 사물로 이루어지고, 이 사물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건과 사물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를 구성하고 소설 속 세계를 완성하는 요소이다. 

5. 박물관과 소설 

 

1. 자존감 

박물관이 사물을 보존하듯, 소설은 평범한 생각과 이성의 불연속성을 구어로 표현함으로써 언어의 묘미와 색과 냄새를 보존한다. 소설은 단어, 표현, 관용구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일상 대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기록한다. 또한 박물관처럼, 소설은 생각을 일깨우기보다는 간직하고 보존하며 잊히는 것에 저항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소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우리의 지각이 만나는 순간을 보존한다. 색깔, 소리, 말, 풍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기록하고, 일정 기간 동안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단순히 자신에게 속한 사물들뿐 아니라, 경험과 삶이 소설에 기록되어 보존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 ‘차별화되는’ 느낌 

어떤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이해받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고, 어떤 소설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즉,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는 동시에, 소설의 중심부를 교묘하고 노련하게 감춘 채 암시만 던져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관을 표현하려 하게 된다. 

 

3. 정치 

 

소설에서 정치를 어디까지 끌어들이느냐 하는 문제에 한계는 없다. 소설가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 즉 다른 공동체, 인종, 문화, 계층, 민족에 속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그 노력 때문에 정치적이 된다. 가장 정치적인 소설은 전혀 정치적 주제나 동기가 없지만,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여, 가장 거대한 전체를 구성하려는 소설이다. 

6. 중심부 

중심부는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 일종의 통찰이다. 깊은 곳에 있는 실재 또는 상상의 신비로운 어떤 지점인 것이다. 소설가들은 이 지점을 탐색하고 그곳이 함축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 소설을 쓴다. 독자들은 감춰진 심오한 의미, 즉 중심부를 찾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소설의 중심부와 의미는 독자에 따라 변하므로, 중심부에(보르헤스는 주제라고 부르는) 대해 논하는 것은 인생관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순문학의 중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하나 이상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소설가가 플롯과 시간 속에 단어로 그려 놓은 풍경을 헤치고, 그것을 시각화하여여, 중심부를 찾아간다. 소설 읽기란 세상에 중심부가 있다는 것을 믿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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