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7 |
이*은 |
4.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3) 37 5. 인과(因果) 47 6. 관계 (關係) 57 |
이*정 |
7. 연기(緣起)와 공(空) 67 8. 공(空)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73 9. 공(空)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 83 |
오*미 |
10. 연기와 무상 92 11. 무상한 사물들 103 12. 무상과 상(相) 112 |
송*소 |
목차
[1] 불교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I. 현대인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용어/ 논증/ 표현 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해 보려 한다.
- 현대인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용어와 논증 그리고 표현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
II. 비교(comparison)와 융합(fusion)
- 융합은 각기 가진 장점을 도입해 각각의 이론을 더 잘 이해하고 또 서로가 가진 문제를 더 잘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 불교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인, 현대인이 붓다의 가르침은 보편적으로 이치에 맞는 내용이라는 점을 이해할수 있도록 비판적 논의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 세상의 변화에 따라 불교 역시 새롭게 해석해서 그 이해를 더 깊고 넓게 하고 기존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해나가야 한다.
III. 공부하는 방법
- 기존의 설명 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그 반론들에 대한 재반박을 하는 논쟁의 형식을 사용하겠다.
IV. 공부와 논의
- 연기에 관해 가장 먼저 3회동안 논의 하고
- 다음으로 대승(大乘)에서 연기가 진화한 공(空)에 대해 두 차례 설명 하려한다.
- 무아(無我), 무상(無常), 고(苦)의 삼법인(三法印)은 연기의 이해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논의를 6회에 걸쳐 설명하며
- 이를 바탕으로 깨달음, 열반, 선(禪), 불성과 여래장, 그리고 자비(慈悲)에 관해 6회에 걸쳐 논의하겠다.
[2]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1)- 붓다의 연기에 대한 개념분석, 논리구조
I. 연기에 대한 현대적 이해
- 나는 붓다의 연기에 대한 가르침을
① 개념적으로 분석하고
②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여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 가장먼저 연기의 이해를 위한 이론적 기초를 다루려 한다.
II. 일상에서 경험하는 인과(因果)와 연기(緣起) -현대 물리학의 발견
- 흔히 연기를 '인과관계'로 생각하지만 연기는 ≠ '인과'가 아니다.
- 게다가 20세기 이후 물리학에서 따르면, 특히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연결된 현상들 사이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를 결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발견되었다. 인과에 개념에서도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전통적 견해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III. 연기
- 붓다는 연기에 대해
"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 라고 설명했다.
1. 이것과 저것- 연기에 대한 이해의 발전
- 12지연기에서 앞선 요소는 뒤의 요소의 원인이며,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연기는 인과로 설명되어 왔다.
- 그러다 대승에 와서 연기를 논리적관계로 해석 하게 되었다.
2. 인과에서 '원인'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 붓다가 말한 '이것', '저것'은, '원인'은 '조건'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 보통 우리는 나머지 조건들이 이미 모두 충족된 상태에서 일어난 마지막 행위만을 '원인'은 가르킨다. 하지만 마지막 행위 그 이전에 이루어진 모든 것이 '원인'이다.
3. 인과와 연기- 이것저것은 물건의 속성이나 성향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 붓다가 말한 이것, 저것을 단순한 물건 속성이나 성향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건의 속성이나 성향만으로는 이 세상에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모든 '원인'대신 요소들을 통칭하는 개념인 사건(event)만이라는 개념이 인과를 이해하는데 적합하다.
4. 조건과 연기- 인과관계가 아닌 관계들이 여러종류 있다.
- 관계에는 인과관계를 넘어선 관계가 많다.
- 남편과 부인, 선생과 학생/동서남북, 상하좌우/ 전후(前後), 우열(優劣) 등 가 아닌 '상호의존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 그러므로 인과라는 말 대신 연기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이시인과/동시인과를 → 이시연기(異時緣起)/ 동시연기(同時緣起)로 쓸 것을 제안한다.
[3]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2) (혹은 무엇이 아닌가)
- 붓다가 말한 연기의 법칙에는 '필연적' 이라는 의미가 없다.
- 또 연기를 이해하려 할때 언어적으로 이해한 단일한 개념이 아닌,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사건'으로 생각해야 한다.
- 연기는 if..then이라는 논리로 치환할 수 없으며,(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 선-후행 조건관계도 아니다.
- '설명관계'와 '상의관계', '비대칭적 의존관계(수반)' 등은 인과관계로는 풀이 할 수 없는 관계이다.
Ⅰ. 이것과 저것 사이의 관계 -필연적인가?
연기의 법칙이 '필연적'것인지에 답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먼저 조건과 결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검토하려 한다.
Ⅱ.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 언어적인 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는 사실 사건을 → 개념으로 대치하여 연합(association)시켜놓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것,저것을 사건이 아닌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Ⅲ. 만약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논리학의 조건문이 아니다.
또한 연기법칙은 ‘만약(if) …이면(then) …이다’라는 논리학의 조건문이 아니다. (ex)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내일은 화요일이라는 사실의 원인은 아니다. 그냥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이 올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존재의 문제를 논리의 문제로 혼동하는 것이다.
Ⅳ.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 인과관계가 아닌 설명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을 인과관계로 인식할 수 있지만 이에 부합하는 관계에는 설명관계가 있다. 쇠의 단단함은 망치의 단단함의 원인이 될 수는 없지만, 재료인 쇠의 단단함은 망치의 단단함으로 잘 설명된다. 질료와 형상을 언급하며 진행하는 설명(explanation)도 연기에 포함된다.
Ⅴ. 이것이 있을 때 이것 아닌 것이 있고, 이것 아닌 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 -상의성
책상은 책상 아닌 것들과의 관계에서만 책상이고, 꽃은 꽃 아닌 것들에 대비해서만 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은 서로가 서로를 조건으로 의지한다. 이것을 상의적 관계라고 한다.
Ⅵ. 이것에 의존해 저것이 있지만, 저것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수반(隨伴, supervenience) 관계이기도 하다.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분명 의존관계가 있는 것 중에 동시적이면서 비대칭적인 의존관계가 있다. 한 떨기 붉은 장미의 아름다움은 이 장미의 물질적 토대에 의존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서양의 분석철학에서는 이를 수반(隨伴, supervenience) 관계라고 부른다.
[4] 연기란 무엇인가 (3)-필연성에 대한 고찰
Ⅰ. 이것과 저것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일까
언어와 논리 및 수학의 세계에 있는 개념들 사이,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하(上下), 그리고 부부(夫婦)와 같은 개념들에 존재하는 의존관계는 '서로가 서로에 필연적으로 의존하는 것' 보인다. 과연 개념들 사이의 의존관계는 필연적인 연기 관계일까?
Ⅱ. 서양 전통에서 말하는 두 가지 진리인 논리학과 자연과학에도 필연성은 없다.
서양인들은 논리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가지 진리 탐구 영역에서 필연성을 탐구했다. 그러나 논리학이나 수학에서의 문장이나, 자연과학의 발견도 주어진 (불완전한) 배경 이론에 의존해서만 의미가 의미가 주어지기에 어떤 필연적인 법칙적 (연기)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1) 이성(理性)의 진리와 연기(緣起)
2) 사실(事實)의 진리와 연기(緣起)
Ⅲ. 연기란 필연적이지 않은 의존관계
물론 연기 관계는 비록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다행히도(fortuitously), 우리가 평소 살면서 경험하듯이, 충분히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반복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성은 필연성 아니다. 이는 사물들에 변치 않는 자성(自性)이 있고 또 그런 사물들 사이에 변치 않는 자성을 가진 관계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아무것에도 필연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아무것에도 집착할 이유가 없다.
[5] 인과因果
인과(因果)는 연기(緣起)를 구성하는 여러 관계 가운데대표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인과= 연기가 아니며 인과는 연기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연기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인과의 문제를 좀 더 엄밀히 검토해보겠다.
1. 인과관계 같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 - 동일성진술과 논리적 관계
모든 관계가 다 인과는 아니다. 동일성 진술(identity statement) -“춘원은 이광수다”,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분석판단-“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논리적 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2. 인과에 대한 몇 가지 전통적 견해
1)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인식적 편의(epistemic expedience)를 위해서, 여러 필요조건들이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갖추어져 배경조건으로 완성 되어 있는 가운데 이 나머지 하나의 조건만 충족시켜 결과를 이루어 낸 마지막 조건을 특별히 ‘원인’이라고 보고 나머지 조건들은 모두 ‘배경조건’으로 취급 한다. 그러나 필요조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원인과 배경조건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반대하며 인과관계에서 원인이라는 개념은 모든 필요조건이 충족 된 상태(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조건들이 다 모인 상태), 즉 충분조건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한다.
2) 규칙적 생멸(生滅)로서의 인과- 자연세계의 규칙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언어적인 표현일 뿐
자연세계에 존재한다는 법칙들은 단지 우리가 보는 사건 유형들 사이의 규칙적 또는 법칙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언어적 표현일 뿐 이다(데이비드 흄). 이것이 인과관계와 인과법칙의 원래 모습이다. 이는 자연법칙에 대한 유명론적(唯名論的) 견해이며, 나는 이것이 공의 관점 또는 인명학(因明學)의 관점을 통해 전개 되는 불교의 견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3) 인식(認識)의 선천적 범주(a priori category)로서의 인과- 현대물리학의 소립자세계에서는 칸트의가 말한 인식의 선천적 범주로서의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 구조가 필연적인 인과관계라고 인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 세계 그 자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필연적인 인과관계라는 현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의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칸트가 제시한 시간적 선후 관계에 바탕한 필연적 인과관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많이 보고되어왔다. 인과나 인과법칙은 기대를 바탕으로 자연법칙을 추상해낸 것일 뿐, 필연성이 아니라고 한 흄이 결국 옳았던 것 같다.
4) 여여(如如)한 인과- 본질적 속성/자성 없이도 사건들과의 연결고리에 의해 사건 x를 이해할 수 있다.
사건 x가 어떤 특정한 본질적 속성 또는 자성을 가져야만 인과되고 또 인과할 수 있다고 보는 본질주의를 견지하지 않고서도 사건 x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인과관계란 어떤 자성과 자성을 가진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이렇게 그러 그러하게(여여如如하게) 연결되어 있는 x와 y같이 자성의 존재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들 사이의 고리들에 불과할 뿐이다. z가 x를 인과하고 x가 다시 y를 인과하는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에 이 인과관계 의 연결 고리들로부터, x의 정체 성(identity)이 확보되고 그것이 다른 사건들로부터 구별(individuate)된다.
[6] 관계 關係_
‘화랑배구단’이라는 팀이 있다고 가정할 때 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여섯 명의 배구 선수일 뿐, 어떤 불가사의한 기체 같은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선수들과 그들의 플레이일 뿐, 그 밖에 ‘팀’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현대 물리학에서는 입자의 모든 속성이 다른 속성과의 수학적 관계에 의해서만 이해될 뿐 어떤 존재가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https://www.kbpf.org/145005//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6|관계關係__홍/
[7][8] ● (2)연기와 공空 1,2,3
https://www.kbpf.org/145144/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7|연기와-공__홍/
공 은 무와는 다르다.- 다만 일상에서는 "쓸모 있는 허구"로 인지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사물은 자성을 가지고 상주하지는 않지만(非有), 그렇다고 해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非無) 대승의 공(空)의 가르침이다. 한자(漢字) 문화권에서 불교의 공(空)과 무(無)를 마치 같은 개념인 것처럼 두 단어를 섞어 쓰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그토록 중요한 공(空)의 개념을 뚜렷한 비판적 검토도 없이 무(無)와 섞어 쓰는 것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무책임하다
※ ex) 자동차도 수많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 집합체로서 하나의 허구(fiction)이지만, 그래도 대단히 유용한 허구이기 때문에 그것을 당분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물이 이렇듯 쓸모 있는 허구들이다. 말하자면 우리 세계는 쓸모 있는 허구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자들로 다가온다. 이렇게 허구로 존재하는 모습을 불교에서는 환(幻)이라고 하는데, 철학에서는 좀 더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현상(現象)으로 분류한다.
https://www.kbpf.org/145343//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8-공空을-어떻게/
[8]
우리 세계의 사물은 어떤 기체나 바탕 없이 단지 현상으로만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조건에 따라 생멸하기 때문에 공(空)하다. 그래서 현상(現象)의 세계여서 공(空)한 우리의 세계는 아무 바탕이나 기체(基體)도 없이 묘(妙)하게 존재한다. 현상과 공은 동전의 양면이다. 단, 그것들은 동전이 없이 마주 보는 양면(兩面)이다.
https://www.kbpf.org/145476/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9-공空을-어떻게/
● (3)연기와 무상(無常) 1,2,3
수학과 자연과학의 모든 법칙은 그 스스로 절대 불변하는 본질적 속성을 드러내주는 진리가 아니고, 모두 주어진 배경 이론 또는 패러다임에 의존해서만 참으로 간주될 뿐이다. 배경 이론이 바뀜에 따라, 또는 한 배경 이론 안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론의 수정 작업이 벌어진다면, 주어진 법칙은 달리 해석되고 그 참 거짓도 달리 결정될 것이다. 최근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후 물리학에서 절대 불변의 상수라고 여겨져온 빛의 속도조차 우주 생성 초기에는 지금보다 더 빨랐을 것이라는 가설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 가설을 검증할 관측이 진행되고 있다. 모든 법칙은 배경 이론 및 실험과 관찰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이 법칙은 관계로서의 연기에 의존하고, 또 연기하는 것은 무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학과 자연과학의 법칙들도 모두 무상(無常)하다.
https://www.kbpf.org/145751/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0-연기와-무상__/
저 하늘 구름 한 점의 가장자리는 어디일까.
만물이 연기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이 공(空)하며 아무것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오직 현상 또는 환(幻)으로서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받아들이는 불교에서는 구름과 그 가장자리의 실재에 대해 헛된 집착을 갖지 않는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本來無一物), 실재하지도 않는 구름의 분명한 가장자리가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연기하기에 자성을 결여해 공하며 또 조건의 생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무상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
...
서구의 상식으로는 사물이 고정불변한 본질을 지니고 실체로서 실재한다. 그래서 사물은 무상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호와 이번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삼라만상이 연기하기에 자성을 결여해 공하며 또 조건의 생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무상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는다. 잘못된 전제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난제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힘들어했을까.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된 지적 고뇌도 고(苦)이다.
https://www.kbpf.org/145925/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1|무상한-사물/
상(相)과 상(相)에 대한 집착은 그것에 해당되는 대상들이 어떤 자성을 가지고 그 밖의 사물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미혹된 견해를 산출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언어와 상(相),감각질과 상(相)
....
나’에 대한 상을 갖는다면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아트만으로서의 참 나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불교의 무아론에 배치된다. 어떤 한 개인, 예를 들어 ‘이순신’이라는 개인에 대한 상을 만들어놓는다면, 우리는 또 이순신이 어떤 자성을 가지고 존재했다고 믿으며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공(空)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한편 위에서 논의한 보통명사로 표현되는 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의가 적용된다. 우리가, 예를 들어 ‘민들레’라는 상을 마음에 품는다면 우리는 먼저 ‘민들레임’이라는 자성을 가진 민들레들을 분별하고, 이 세상을 민들레들과 민들레 아닌 것들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이들을 서로로부터 차별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의 가르침에 어긋나고 또 서로 연기해 상호작용하면서 걸림 없이 연결되어 있는 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하게 될 것이어서, 우리를 깨달음의 길에서 필연적으로 멀어지게 할 것이다.
연기와 공에 어긋나고 자성에 대한 집착을 일으켜 이 세상을 분별과 차별의 눈으로 왜곡되게 보게 만드는 그 어떤 상에도 매달려서는 안 되겠다. 실은 처음부터 상을 일으키지도 말아야 한다.
https://www.kbpf.org/146888/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2|무상과-상相__/
● (4)무아 (無我) 1,2,3
무아
https://www.kbpf.org/151467/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3/
무아2
오온(五蘊)
붓다는 우리 개개인을 오온,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다섯 가지의 다발이 모여 있는 복합체로 보았다. 이 오온의 각각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1. 색(色) – 모양을 가진 것, 즉 물질적 또는 물리적인 대상을 말한다. 물리적인 모든 것은 그것이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공간 속에 존재하고, 공간 속에 존재하는 한 그것은 모양을 갖는다.
2. 수(受) – 쾌락이나 고통의 감각, 또는 이 둘 다 아닌 무덤덤한 감각
3. 상(想) – 대상의 감각적 속성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하늘의 푸른빛 보기나 꽃향기 맡기, 또는 종소리 듣기와 같은 것들이다.
4. 행(行) – 심신의 활동을 가져오는 심리적인 동력, 예를 들어 탐욕과 분노, 애증, 집중, 시샘 등이다.
5. 식(識) – 심신 상태의 자각 또는 그 자각 자체를 말한다.
오온의 무상(無常)함과 무아(無我)
무아에 대한 붓다의 몇 가지 논증이 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지고 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논증은 오온 각각이 무상하다는 통찰과 함께 진행된다.
1.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색수상행식의 오온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상하다.
2. 자아(참나)나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원불변 불멸이다.
3. 그러므로 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https://www.kbpf.org/166102/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4/1
무아3
https://www.kbpf.org/166380/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5|무아無我-3__/
● (5) 마음 1,2,3,4
정말 마음이 없을까?
지금까지 ‘마음은 없다’라고 몇 번 말했지만, 그것은 실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대로 본질을 지니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마음이 없다는 뜻이고, 또 한국 불교계 일부에서 말하는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본질을 가진 실체로서의 참마음이 없다는 뜻이지, 실체가 아닌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는 심리 상태들의 존재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붓다가 가르친 오온(五蘊)에서 네 가지 심리 상태를 언급했는데, 이 네 종류의 다발들은 실체라기보다는 심리 상태(mental states) 또는 심리 현상(mental phenomena)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이기도 한다. 현대 신경과학이나 생리학 그리고 철학은 실체로서의 마음은 인정하지 않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이러저러한 물리현상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하며 생멸하는 의식 또는 심리 상태가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며 그 속성을 연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마음은 없다고 해도 현상(現像, phenomenon) 또는 가(假, provisional)로서의 심리 상태 또는 심리 현상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에서 벗어난 본질을 가진 실체로서의 ‘경직된’ 마음은 존재하지 않지만, 물리현상에 의존하며 변화하는 심리 상태 또는 심리 현상으로서의 마음은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로 한다.
https://www.kbpf.org/166523/현대적으로-이해하는-다의가르침-16-마음은-없다__홍/
다시보아도 마음은 없다
https://www.kbpf.org/166913/166913/
내 마음은 내것이 아니다.
-- 내 마음의 내용은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https://www.kbpf.org/166767/
논리적,실용적,도덕적· 법률적으로 요청되는 나의 존재는 있다.
참나는 없지만 나는 편리상 있다. 나는 참나로서 상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무(無, 斷滅)도 아니다. 나는 묘(妙)하게 있다.
https://www.kbpf.org/167106/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9-참나와-나__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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