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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참고자료
(1)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고대 도덕에서 추구되는 것은 행복과 쾌락이지 물질적인 효용이 아니다.
개인이 주고 받는 행위가 아닌 '집단'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선물경제에는 '선물을 주어야 하는 의무',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의무', '답례해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선물경제는 집단 혹은 사회 체계 속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고, 이는 합리적 교환를 의미하지 않는다.
포틀래치(Potlatch):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파괴와 명예의 메커니즘
- 북미 치누크 부족의 언어로 '식사를 제공하다' 혹은 '소비하다'를 뜻함
-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회적 '선물 게임'이자 권력 통제 기제
- 치적 권위를 오직 경제적 자산의 소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게 설계
- 실질적으로 이들의 삶은 자본주의적 생산성 논리를 압도하는 고도의 윤리적 결단
- 10배 효율적인 쇠도끼가 도입되었을 때, 원주민들은 10배를 더 생산하여 재산을 축적하는 대신,
노동 시간을 10분의 1로 줄이고 남은 시간을 휴식과 공동체 활동에 할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유지하고 권력의 독점을 방지
(2) <한뼘 양생> - 순환의 원리에 순응하는 노년의 모습
생명의 순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9186070
한뼘 양생 | 이희경
용인 수지의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이희경의 양생-에세이집. 건강해지라는 사회적 명령, 관리하라는 자본의 유혹에 맞서 스스로 삶을 돌보는 기예로서 ‘양생’을 새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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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낭송 장자』(북드라망, 2014)에서 이 포정해우(庖丁解牛)편에 나오는 ‘양생’을 ‘삶을 가꾸는 기예’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오래된 단어가 제 삶에 훅~ 들어온 것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부터였습니다. 어머니는 병들고 늙어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신세 한탄을 했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원망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나이듦=처량함은 어쩔 수 없는, 모든 노인의 보편적 감정일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머니의 우울증은 어머니의 자아 이상(理想)이 주름 없는 젊음, 아프지 않은 몸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우리 사회에서는 젊음과 건강이 너무 강력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결여와 비참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죠.삶의 지평에서 죽음을 허겁지겁 감추고, 몸의 리듬에서 질병을 완벽히 추방하여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세계보건기구)라는 ‘정상성’을 삶의 목표로 제시하는 생명 권력을 문제 삼기 위해서는 ‘건강’이나 ‘의료’를 대체할 다른 개념이 필요했습니다. ‘양생’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생-로-병-사의 국면들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 모든 생명의 죽음은 다른 생명의 탄생으로 순환되는 게 우주의 원리라는 것을 다시 환기하기 위해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꼭 되살려야 하는 용어라고 생각했습니다.구체적으로는 나이듦과 죽음에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아픈 몸으로도 잘 살아가기 위한 지혜는 무엇일까?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것들이 마련되어야 하는가? 이것들을 어떻게 우리 공부의 화두로 삼고 함께 공부해 나갈 것인가? 어느덧 저에게 양생은 이 모든 것들을 실존적으로 지시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나도 어머니를 돌보고 있지만 독박 가족 돌봄은 지겹고 괴롭다. 그런데 가족을 넘어 우정의 네트워크 속에서 병든 친구의 돌봄을 함께 감당하기로 하자 타자를 돌보는 일은 우리에게 배움을 일으켰다. 상호의존의 현실을 더 깊이 깨닫게 했고, 돌봄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감정을 성찰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감정이 우리를 성숙시켰다. 친구가 암에 걸리는 불행으로 인해 우리는 돌봄이라는 우정의 새로운 용법을 발명해 냈다. 이제 늙고 병드는 일이 속수무책으로 닥쳐오겠지만, 우리는 가족 안으로 숨는 대신 타자를 향한 조건 없는 돌봄의 증여 네트워크 속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나는 점점 더 그런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2부_생명과 돌봄」 중에서)

애틋한 엄마였지만,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엄마였다. 처음 4년, 가장 큰 어려움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덕분에 같이 사는 나도 종종 우울 상태에 빠져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아니면 나를 자책했다. 출구가 없는 캄캄한 돌봄 터널에 갇힌 것 같았던 그 시절, 읽고 쓰는 일이 없었다면, 루쉰과 장자가 아니었다면, 매일 걷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동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다음 3년은 스펙터클했다. 낙상, 허리 골절, 5개월간의 입원과 퇴원, 그리고 수두증, 뇌 션트수술, 지독한 섬망, 다시 입원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탄 시기였다. 간병이란, 우에노 지즈코 말대로, 몸은 환자와 떨어져 있어도 잠시도 잊을 수도, 내려놓을 수도, 쉴 수도 없는 무거운 짐 같은 것이라더니, 정말 나는 수년 동안 등이 휠 것 같은 간병의 무게 속에서 허덕였다. 그리고 이 돌봄노동은 “살과 뼈를 갈아 넣어도 절대로 완결되지 않는”(전희경 외,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봄날의책, 2020) 것이었다. 나가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해야 하는 상황이 7~8년 반복되자 나의 돌봄 에너지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렇게는 지속 가능한 돌봄이 불가능했다. 돌봄 배터리가 완전히 손상되기 전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다.(「부록_간병블루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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